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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Sep 17. 2020

안경을 벗으면 세상은 흐릿해지지만 자아는 선명해진다

흐릿함과 선명함에 대해

요즘 매일같이 마스크를 착용한다. 집 근처 한강변을 산책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빠르게 걷다 보니 숨이 차고, 답답하고, 무엇보다도 안경에 김이 서려서 불편하고 신경이 쓰인다. 시력이 좋지는 않지만 적어도 달려오는 사람이나 자전거는 알아보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이라 요즘은 안경을 벗고 걷는다. 마스크를 벗을 수 없으니 안경을 벗어야겠지.


여의도의 고층빌딩들은 흐릿한 빛무리로 보이고, 나무와 수풀도 그저 형태만 겨우 보인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이목구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놀랍게도 조금 자유로워진 기분이 든다. 나를 둘러싼 세상으로부터.


아예 보이지 않으면 두렵겠지만, 적당히 보이니 오히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명상할 때 눈을 감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눈은 우리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할 자유"를 일정 부분 앗아간다. 보이는 것들로 인한 시각적 자극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눈과 뇌의 신경이 연계되어있으니, 그만큼 보이지 않는 것에 할애할 수 있는 뇌용량이 줄어드는 것 아닐까? 모태문과지만 감히 추측해본다.


세상이 흐릿해지면 세상과의 연결감은 잠시 옅어지고, 내 자아가 의식의 수면 위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타인이 보이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는다.

멋지고 예쁜 것들도 보이지 않으니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다.


요즘 카메라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여 속된 말로 "모공까지 보이는" 초고화질의 영상 시청이 가능해졌다. 다만, 가끔은 저화질도 괜찮은 것 같다. 타인의 모습과 삶을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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