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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Oct 20. 2020

장기하 | 상관없는 거 아닌가?

커버 사진이야 어떻든 상관없는 거 아닌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장기하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사실들만을 알고 있었다.

서울대 출신. <싸구려 커피>. 장기하와 얼굴들. 홍대 인디씬. 아이유와의 공개 연애. 이 정도가 다였다.

그의 노래를 적극적으로 찾아 듣거나 공연에 가 본 적도 없으며, 그의 인터뷰를 접한 적도 없다. 다만 그의 이름을 알고 있으며 그가 한국 대중음악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책 뒤표지에 적혀 있는 이슬아 작가의 말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장기하"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음악이 아닌 글로 전달하고 싶은 바가 있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성공이다.


그는 꽤 가지런한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지 몰라도) 영혼의 소유자인 것 같다.

본인은 정리왕 어머니의 그림자에 가려 자신의 방을 "설치미술"로 여기며 살아왔다고 고백하지만, 잘 정리된 그의 집처럼 그의 우선순위와 기준도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딱히 힘을 주려고도, 또 힘을 애써 빼려고 하지도 않은 듯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전업 작가가 아닌데 내가 글을 조금 못 써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라며 글을 썼을 것만 같다.




인사동의 한 서점에서 집어 든 이 책을 내가 굳이 사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웃겨서.

너무나 진지하게 "인생 최고의 라면"을 거의 몇 페이지에 달하는 지면을 할애해 묘사하는 것이 웃겼고, 성공한 음악인인 자신도 다른 인스타그래머들의 팔로워 수를 보며 절망(?) 하기도 한다는 고백은 웃펐다.


세상에는 많은 책이 있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대중에게 호통치고, 자신의 굴곡진 인생사를 고백하고...

그런데 생각보다 "웃긴" 책은 많지 않다.


물론 장기하가 웃기려고 이 책을 썼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을 의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는 오히려 아주 진지하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웃음은 공감의 표현으로 웃는 웃음이다.

아, 이 사람도 인간이구나. 인생 별 거 없군.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음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있다면 팍팍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덜 헤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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