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 아야코 | 약간의 거리를 둔다
'거리 두기'의 미학
아마 작년 한 해 우리가 언론에서 가장 많이 접한 단어 중 하나는 단연 '거리 두기'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 19로 인해 '거리 두기'라는 말이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소노 아야코가 이야기하는 '거리 두기'는 삶, 타인,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간혹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여기에서 약 20cm만 앞에 서 있다면 나는 달려오는 차에 치여 목숨을 잃거나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겠구나. 이 20cm의 거리를 인지하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은 것이구나.
또 생각해보면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타인과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일정한 신체적인 거리를 둔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영화를 관람할 때 등 특별한 상황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옷깃을 스치며 가까이에 앉거나 서는 것이 용인되며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거리 두기'의 원칙들을 지키고 때로는 어기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추상적일뿐더러 우리가 죽음을 맞이해야만 완성되는 '삶'과는 어떻게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중 우리에게 가장 많은 고뇌와 번민, 또 희열과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인간관계일 것이다. 이에 대해 소노 아야코는 3부 <타인의 오해>를 통해 타인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성찰한다. 타인은 필연적으로 '나'를 오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타인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호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결국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다.
"긴장이란 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난다.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칭찬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칭찬받는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칭찬받았다고 해서 나의 실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듯 비방당했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훼손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p. 98)"
그런가 하면 그녀는 2부 <고통은 뒤집어 볼 일>을 통해 개인이 살아가며 겪는 불행과 고통을 단순히 극복하고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닌, "사유재산"으로 정의하며 "불행도 재산이므로 버리지 않고 단단히 간직해둔다면 언젠가 반드시 큰 힘이 되어 나를 구원한다 (p. 46)" 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저자 소개에 간략하게 쓰여있는 그녀의 성장 배경을 알고 난 후 그녀의 이 말은 아주 무겁게 읽혔다. 이 이치를 직접 겪고 체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녀는 희망과 불행 모두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둔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유명한 말 -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 이 떠오른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인생의 관객이 되어 평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과연 비극일까 희극일까? 얼마만큼 떨어져서 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은 단순히 희극이나 비극이라는 단편적인 장르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 희극과 비극 모두 볼 수 있도록.
1부 <나답게가 중요해>와 4부 <보통의 행복>의 핵심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다. 나다운 행복을 찾아 나답게 살자. 행복을 정의하고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결국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화려한 '성공'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도 사실 참담함 속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으로부터도 약간의 거리를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