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HNW들의 이중적 자기 연출
한국의 고액자산가들은 스스로를 부자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단어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부자라는 사실은 그 어떤 언어보다도 더 강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이 드러남이 직선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말 대신 이미지로, 설명 대신 맥락으로, 과시 대신 은유로 나타나는 그들의 자기 연출 방식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부자의 삶’과는 다른 결을 갖는다.
그들은 드러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숨기고 싶어 한다. 이중성은 거의 본능처럼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예로, 고급 스시 오마카세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자. 인물은 등장하지 않고, 매장의 간판도 보이지 않지만, 수조 위에 올려진 접시의 질감이나 셰프의 손 모양만으로도 그 장소가 어딘지 아는 사람은 알아챌 수 있다. 이들은 대중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소수에게는 철저하게 보여준다. 익명 속에서만 존재감을 얻는 이 연출법은 곧 한국형 고액자산가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이러한 자기 연출의 방식은 외국의 고액자산가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의 고액자산가들은 대체로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사회공헌재단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거나 대학 기부로 기념관에 이름을 새기는 것처럼, 이들은 ‘내가 이룬 것’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유럽의 전통적 자산가들은 보다 절제된 방식으로 자신을 연출하지만, 그 절제조차도 귀족적 품위나 문화적 배경이라는 구체적인 틀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한국의 자산가들은 이 둘 모두와 다르다. 이름을 드러내지도, 전통이라는 무게에 기대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회적 시선과 비판을 의식한 채, 오직 ‘계산된 침묵’으로 정체성을 설계한다.
소비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명품을 사되, 그것이 단지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인식한다. 브랜드 로고가 잘 보이지 않는 제품을 선호하거나, 소수만 아는 컬렉션을 수집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상업적 안목을 과시한다. SNS에 올리는 콘텐츠조차 익명성이 유지되는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공유되며, 많은 경우 그 계정은 비공개이거나 소수 지인만 열람할 수 있도록 설정된다. 겉으로는 과시하지 않는 듯하지만, 사실상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고도로 설계된 관계망을 구축한다. SNS에서는 익명으로 행동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같은 수준의 사람들과만 어울리기를 원한다. 같은 레스토랑을 다녀도, 같은 이벤트에 참석해도, 그 안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을 알아보고 연결되는 구조를 선호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철저하게 익명화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정교한 계층 인식을 통해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강화한다.
기록 또한 이들의 중요한 행동 패턴 중 하나다. 가족 또는 지인과 함께한 해외여행, 특별한 와인 테이스팅, 자녀와의 문화 체험 등은 모두 영상이나 앨범으로 정리되며, 대부분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이것은 전시가 아니라 일종의 증명이다. 나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의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지만, 그 증인은 지극히 제한된 범위에 존재한다. 말하자면 ‘은밀한 증거’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한국형 고액자산가의 삶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들의 세계는 침묵과 연출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는 단순히 조심스러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자산가에게 부여하는 잠재적 비난의 가능성을 내면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조명을 받기보다 조명을 비추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연결하고, 때로는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