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겨내기
새로 이사 온 집은 아침이면 햇살이 기분 좋게 몰려오는 남향이다. 일어나자마자 슬립 가운을 한껏 죄여 매고 커피 한잔을 내리는 동안 햇살을 머금은 창문 밖을 내다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언제 잎이 자라려나, 철을 모르고 지저귀는 새들은 어떻게 생겼으려나 생각해보는 취미가 생겼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간 시간들을 마음에 품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2020년 1월 14일 일기]
올해 초 COVID-19 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져나가면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자제하고 지낸 지 벌써 6개월이다. 집 앞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고 여린 잎사귀들이 짙푸르게 익어가는 동안 손으로 한번 쓰다듬어 보지 못하고 눈길만 주었다. 지저귀는 새소리는 잠잠해졌고 웬일인지 이번 여름에는 매미소리도 나지 않았다.
뜬구름과 디지털 세상에 접속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세상과의 접촉을 갈망한 지 반년. 간신이 붙들고 있는 세상과의 끈을 놓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외출을 결심했다. 오랜만에 아들과 집을 나섰다. 아니, 집을 피해 밖으로 나왔다. 매일같이 쓸고 닦으며 정을 붙여온 이 집이 지겨울 대로 지겨웠다.
차를 어디에 세워뒀는지 잠깐 고민했다. 쓰윽 둘러보니 내가 기억하는 까맣고 광택이 나는 우리 차는 온데간데없고 까맣고 먼지가 잔뜩 뒤덮인 차가 보였다. 거 참. 뒷좌석의 문을 먼저 열고 아들을 카시트에 앉혔다. 안전벨트를 채우는데 어느새 길게 자라난 아들의 다리가 눈에 띈다.
매일 마주하고 24시간 붙어있어서 몰랐던 걸까? 아들은 정말 많이 자라 있었다. 얼굴살이 쏙 빠져서 앳된 모습이 사라졌고 어깨가 넓어졌고 무엇보다 발이 커졌다. 예전에 신던 신발이 맞지 않아 뒤가 뚫린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엄마는 괜스레 미안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제 내가 운전석에 앉을 차례인데 조금 걱정이 앞선다. 운전을 한 게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100킬로를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도 긴장 한번 안 했던 나인데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떨렸다. '흐읍' 큰 들숨을 마시고 차에 올라탔다. 좌석은 남편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간 혼자 장을 보러 다니며 전투태세로 마트에 드나들었을 남편이 떠오른다. 코가 안 좋아 수술까지 한 남편이 입과 코를 막은 채로 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본다. 아내는 또 미안하다.
출발부터 떠나는 차가 무겁게 느껴지는 건 미안한 마음이 가득 실려서겠지. 좌석을 내 몸에 맞게 조정하고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를 조정한다. 내 마음도 기쁜 마음 올리고 슬픈 마음 내렸으면 좋겠는데 그건 안된다.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아들을 향해 윙크 한번 해주고 출발.
오늘 우리가 향하는 곳은 동네 마트다. 위험하다는 집 밖으로 뛰쳐나와 향하는 곳이 마트라니. 아이러니지만 집에서 마주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접하기에는 그곳 만한 데가 없었다. 내 예상대로 평일 오전에는 마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었다. 벽돌을 세워놓은 듯 빽빽하게 채워졌던 주차장은 이제 한가하다. 주차할 곳 두 자리를 먹은 막 나가는 차도 보이고 카트 반납하는 곳 옆에 세워진 반듯한 차도 보인다. 뜨문 뜨문 세워진 차들을 보며 '자동차들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모양이지?' 하고 피식 웃는다. "엄마 왜 웃어?"라고 묻는 아들을 애써 외면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설명하기란 참 여러모로 복잡할 거 같아서.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비상경계령이 극에 달했다. "아들, 엄마가 말했지? 절대 아무것도 만지면 안 돼." 재차 반복하며 소독된 카트를 챙겨 받았다. 그리고 마트 문 앞에 쓰인 경고문을 응시했다.
주의: 마트 이용 시 마스크를 꼭 착용하세요.
한 번 보고 두 번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문구이다. 마트를 가는데 마스크를 써야 한다니! 눈만 내놓고 마트에 들어서는 건 아무래도 내 취향이 아니다. 뭔가를 훔치러? 들어가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리라. 자연스럽게 행동해야지 다짐하고 마트에 들어섰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만지지 마!
아들이 꽃을 만지고 있었다. 누가 꺾었을지 모르는, 누가 꽂아 놓았을지 모르는, 누가 들었다가 놓았을지도 모르는!! 마스크 밖으로 터져 나온 나의 외침에 놀란 아들은 시무룩한 눈을 했다. 입도 코도 볼 수 없었지만 아들이 극도로 슬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들에게 다가가서 눈으로만 보자고 말했다. 만지지는 말라고 당부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이후에도 아들은 뭔가를 계속 망설이고 있었는데 나는 짐작이 갔다. 아들은 꽃을 사고 싶은 것이다.
"엄마, 나 꽃 사도 돼?"
평소 같았으면 어렵지 않았을 질문인데 오늘은 유난히 힘들었다. 된다고 해야 하나, 안된다고 해야 하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계산이 오고 갔다. 집에 꽃병은 어디다 뒀는지, 꽃을 꽃아 어디에 놔둬야 할지 등등. 아들이 맘에 들어하던 꽃다발 앞에 $3.99라는 가격표까지 확인한 후 승낙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신이 났다. 꽃코너를 돌고 또 돌고 한평 남짓한 공간을 맴돌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아들이 해바라기를 뽑아 왔다. 나는 멈칫했다. 해바라기는 $4.99였기 때문이다. 1불 차이인데 내 마음이 옹졸해졌다. 사 말아? 마트를 돌며 다른 생필품들을 고르는 동안 계속 신경이 쓰였다. 우리가 마침내 계산대에 들어섰을 때 아들에게 한번 더 물었다.
"이 꽃 진짜 갖고 싶어?"
"응. 진짜 진짜 갖고 싶어."
"어디다 놓을 건데?"
"아빠 공부하는 책상."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자택 근무로 서재에 갇혀있다시피 하는 아빠의 책상 위에 놓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몰랐네. 3.99 받고 4.99 가자!
아주 잠깐이었지만 꽃을 사고 싶지 않았다. 뿌리가 없는 식물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에도 좋지 않았거니와 없어 사라질 것을 뻔히 아는 꽃을 돈 주고 사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아들의 한마디가 나를 울렸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했던 지난날의 나를 상기시켰다.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존재의 이유를 떠올리길 좋아했던 반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 이 해바라기로 툴툴 털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꽃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기는 할까?
색깔 없는 질문을 던져보며 마트에서 나오는 길, 유난히 노란 해바라기 덕에 마음을 밝혀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