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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정 Aug 19. 2021

체르니 어디까지 쳤어요?라는질문이 놓치는 것

<그로잉맘 함께육아  6>

 ‘체르니 어디까지 쳤어요?’라는 물음은 피아노 연주 기술의 레벨을 묻는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가 되었어요. 하지만 이 질문을 통해서는 학습자가 누리고 있는 악기교육 혜택을 파악하기 힘들어요. 질보다 양을 묻는 이 질문만으로 만족하게 된다면 학습자들이 악기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좋은 혜택들을 살필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도록 채찍질하는 것과 같아요.  

 

 창의성에 기반한 자기 표현력, 끈질기게 파고드는 지구력과 집중력 등 우리가 흔히 들어본 높은 수준의 악기교육 혜택은 단순히 악보를 읽어낸 뒤 그 음정에 해당하는 건반을 누를 수 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지 않아요. 단순한 악보 읽기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시다’를 더듬거리며 읽는 것과 같으며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다’처럼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없죠. 

 

 실제로 한국의 많은 학습자들이 체르니 30번 혹은 40번까지 도달하기 위해 진도 빼기에 중점을 두다 보니 어려운 곡을 연주하고는 있지만 새 악보를 받으면 시작하는 음조차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운 좋게 시작하는 음을 찾아낸 경우라 할지라도 프레이즈를 찾아내거나 곡의 구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죠. 스스로 곡을 정하고 살펴본 뒤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학습자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져요. 

 

 음악에서는 마법같이 심금을 울리는 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음색”(Musical tone, timbre)의 미묘한 차이를 활용해요. 이 미묘한 음색의 차이는 단순히 주어진 악보를 읽어내는 수준에서는 경험할 수 없어요. 악보 읽기 이전의 단계, 즉 악보의 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표현해 내기 위해 어떤 몸의 동작이 수반되어야 할지를 가늠하는 사전 단계를 거친 후에야 경험할 수 있어요. 즉, 악보 이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악기교육을 통해 의도한 음색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학습자의 일상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쳐요. 우선, 주변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되죠. 또 언제든지 소리를 꺼내 볼 수 있도록 크고, 작고, 짧고, 긴 소리들을 분별하여 자신만의 소리 창고에 저장해 둘 수 있어요.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소리들을 시각화할 수 있고, 어떤 식으로 몸을 움직여야 그 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지 알아가기 시작한답니다. 작은 소리는 작은 동작, 큰 소리는 큰 동작과 관련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체르니 어디까지 쳤어요?” 보다 “악기교육을 통해 학습자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라는 질문은 어떨까요? 음악교육의 질적인 면을 묻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해요. 양육자로서 학습자가 평소보다 상대의 말에 더 잘 귀를 기울이고, 조금 더 말투에 신경을 쓰고, 작은 변화도 알아차리는 통찰력이 자라났는지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요? 진도에 급급한 마음 내려놓고, 학습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의 속도에 올라타 보는 건 어떨까요? 학습자가 얻는 악기교육 혜택과 그 영향의 정도는 진도의 속도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조금 더 느긋하게 불필요한 비교 없이 학습자가 누리는 음악교육 혜택을 관찰해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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