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미정 Jul 12. 2023

써버릴 것인가 잘 쓸 것인가

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 기고 4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을 나이 '불혹(不惑)'을 앞두고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독한 흔들림을 겪는 중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듯, 새로 찾아온 하루를 반기고 보듬어 줄 에너지가 내 몸 밖으로 여기저기 새 나가고 있다. 결국 나는 시름시름 앓다가 뜻하지 않은 와식(臥食)을 일주일째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나의 속절없는 휴식이 그저 반갑지만은 않은 이가 있는 듯하다. 바로 보드게임 상대를 잃어버린 아들이 그렇다.


한 날은 시무룩해진 아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 복대를 허리에 차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커넥트포 Connect Four (일종의 오목과 같은 보드게임)를 하자고 아들에게 권했다. 물 젖은 빨래처럼 축 처졌던 아들은 보송보송 생기가 솟아나더니 쏜살같이 달려가 게임을 챙겨 왔다. 첫판은 내가 이겼고, 두 번째 판부터는 내가 계속 졌다. ‘아들 제법인데?’ 하며 새로운 판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또다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미처 예상하지도 못한 아들의 엄청난 수에 말려들면서 코인 둘 곳을 잃은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들,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남은 코인을 써버려.”
“엄마, 기다려봐. 난 써버리지 않고 잘 쓸 거야.”


아들의 대답을 듣고 머리가 띵했다. ‘써버리다’와 ‘쓰다’의 미묘한 차이가 그제야 보였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간 끊임없이 하향하던 나의 에너지 총량의 근본적 원인이 ‘써버림’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써버린다는 것은 ‘쓰다’와 ‘버리다’의 합성어로 ‘탕진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마디로 쓴 것에서 얻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내게 남아있는 에너지를 의미 없이 써버렸고, 그 무엇도 얻지 못했다. 내 안에 텅 빈 공간이 늘어날수록 세상일이라는 바람이 일으킨 흔들림은 더욱더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특별한 선생님, 아들을 통해 흔들림 없는 단단한 내면을 채우기 위해선 내가 가진 에너지를 무작정 써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 써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빽빽하게 채운 계획표대로 사는 것도 에너지를 잘 쓰는 방법 중 하나겠지만 나는 우선 그보다 앞서 ‘써버린’ 시간들을 돌아보려 한다. 재활용할 것은 없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회고를 통해 지나쳤던 깨달음의 순간을 발견하면서 오늘이 주는 선물 present를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불혹을 지나,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으로 향하는 삶의 여정이 조금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탈리아 로마 여행중 트레비 분수 앞에서 동전 세 개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아들


미주 한국일보 기사 전문

미주 한국일보 기사 바로가기


이전 03화 읽기와 쓰기, 그게 뭐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