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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정 Jul 10. 2023

최선을 말하다

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 기고 2

‘낮은 인문학’ 책을 읽다가 고대 이집트의 장례용 경전인 ‘사자의 서 The Book of the Dead’에 등장하는 아래의 문구를 만났다.


“너의 심장은 최선을 다한 심장인가.”


이 문구는 ‘너는 살아생전에 너에게만 맡겨진 소명을 이루려고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를 묻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 문구를 마주한 순간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는데 피할 수 없다면 맞붙자는 심정으로 마스크를 두 개나 겹쳐 쓰고 올라탄 비행기 안에서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의 마음으로 숨죽이고 있던 나의 심장이 뜨끔했다. 문구에 의하면 세상에 태어나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삶의 이유를 모르는 것’이며 귀로 들은 우주의 소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 말한 것을 행동하지 않는 것도 옳지 않다. 잘 듣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주위에 전하는 수고로움을 택해야 하며 말로 내뱉은 것을 칼같이 지켜내야 하는 삶이라니!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고 내 심장을 다독이다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사람을 마주했다. 그건 바로 엄마였다. 당신 삶의 이유를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에게 보여주신 분. 내 입에서 거짓이 흘러나왔을 때 가장 무섭게 훈계하셨고, 내 입에서 진실이 흘러나왔을 때 가장 뜨겁게 사랑하셨던 분 슬하에서 자라며 적어도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시늉이라도 해 볼 수 있도록 자란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작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엄마는 초등과 중등 검정고시에 연달아 합격하고 고등 검정고시 과정을 막 시작하셨다. 미용실 출근 전후로 나의 수능 책상에 앉아 인터넷 강의를 들으시는 엄마의 옆모습을 바라볼 때면 어느새 내 눈앞엔 낭랑 18세의 고운 엄마가 와서 앉아 있곤 했었다.


“얘, 근데 계속 들어도 뒤돌아서면 까먹고 그런다. 호호.”

“엄마, 내가 공부 진짜 어렵다고 한 말 이제 알 것 같지?”


농으로 건넨 나의 대답에 빙긋이 웃으며 아침 식사를 권한 엄마에게서 나를 향한 작은 인정이 묻어 나왔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그래 딸, 너 열심히 산 것. 그거 인정. 본인의 때를 알고, 진실을 말하며 또 실천해 온 엄마였기에 그 인정이 더욱 값졌던 것 같다. 심장이 뜨끔한 날, 엄마처럼 최선을 사는 사람을 곁에 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들이 삶의 이유가 흔들리는 순간을 맞이한다면 그에 최선을 말해줄 누군가가 나일 수 있기를 바라보며 오늘의 최선을 살아본다. 


나의 최선이 녹아든 피아노와 도자기


미주 한국일보 기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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