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 기고 11
아들의 생일파티를 마치고 파티에서 이야기를 나눈 지인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문자는 단 한 줄이었는데 내 얼굴엔 다섯 줄 정도의 눈물길이 났다.
“아이 낳고 타지에서 건강하고 멋지게 잘 기르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파티에서 나는 우리 가족의 이민 역사를 털어놓았었다. ‘남편의 박사과정 00년 그리고 박사 후 과정 00년을 거쳐 최종적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터를 잡았다’는 식의 누가 들어도 뻔한 이야기. 그런데 이 진부한 서사에 등장하지 못한 ‘나’라는 인물의 수고로움을 알아봐 준 해외 이주 여성이 등장한 것이다. 메시지를 받고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한 가장의 이야기가 한 가족의 역사로 대표되는 우리 가족 이민사를 조금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셋이 되었다는 불림의 역사 이전에 ‘나’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역사를 헤아려 보기로 결심했다. 우리 가족 이민 역사에서 우뚝 솟아 있는 남편의 학력과 경력의 사방(四方)을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그 사방에 내가 있었다. 오랫동안 공부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며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밑 네트워크(HR)를 다지고, 타이트한 예산으로 건강한 한식 밥상을 차리기 위한 재무 관리와 식단 연구 개발(R&D)에 매진하며, 목도 가누지 못하는 새 생명을 위해 인재 양성에 뛰어드는 것은 물론, 10년 장롱 면허가 무색하게 시속 65마일의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변혁을 꾀해 최단거리 라이드를 구축(기획 전략)하는 ‘용기 있는 경력’을 가진 내가 그곳에 있었다.
한 가족의 역사에 남편 따라 나온 해외 이주 여성인 ‘나’를 드러내어 포함시키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소용이 있다고. 특히나 내가 독립적인 인격체를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양육의 주담당자이기에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라고 말이다. 나는 다행히 뜻을 같이하는 해외 이주 여성들을 만나 ‘엄마다움’의 닫힌 정의를 거둬 내고, ‘나다움’으로 거듭나기를 돕는 비영리단체 테이크루트(501c3)를 공동 설립할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누적 863명의 참가자들 중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커뮤니티의 숨은 영웅들을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이렇게 서로의 수고로움을 알아보고, 또 각자의 서사를 나누며 촘촘한 뿌리를 서로 엮어 나가다 보면 돌봄의 선순환을 이루는 단단한 임팩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서 그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