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미정 Jul 19. 2023

빛의 속도

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 기고 10

자라나는 아이의 속도를 쉽게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 든 날은 삼 년 전쯤 아이가 처음으로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려간 날이었다. 그날은 아이가 고꾸라질까 봐 두려움에 떨던 내가 두 손을 아이의 두 발 자전거에서 슬쩍 뗀 날이기도 하다. 손을 뗐다는 말도 못 하고 헉헉거리며 자전거 속도에 맞춰 달리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던 그날, 아이는 내 머릿속에 그려본 오만 가지 시나리오가 무색할 정도로 단숨에 앞으로 나아갔었다.


그 뒤로 아이는 줄넘기를 배우고, 훌라후프를 배우고, 또 축구를 배웠다. 처음에는 정말 난감할 정도로 못했지만 결국엔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아졌다. 그동안 나는 자전거 타기를 멈췄고, 요가 배우기를 멈췄고, 또 오래 달리기를 멈췄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나는 그 무엇도 시작하지 못하는 어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 우리가 빛의 속도로 날아갈 수 있을까?”


며칠 전 과학 서적을 읽던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타임머신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던 중 문득 떠올랐나 보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글쎄’라고 얼버무리는 것 밖에 없었다. 아이의 궁금증은 날마다 자라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빛의 속도로 ‘모른다’고 답하는 것이라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더 빠른 이동 수단이 개발되고, 나아가 먼 미래로의 여행까지 가능해진다면 나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 갈 아이에게 나의 쓸모란 무엇일까 싶었다.


김초엽 작가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소설을 통해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 외로움의 총합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나에게는 이 메시지가 ‘기술발달과 더불어 필연적으로 늘어날 외로움에 대비해 미리미리 사랑의 총합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자’는 작가의 선견지명으로 다가왔다. 빛의 속도를 추구하며 겁 없이 앞으로 나아갈 아이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사랑의 경험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면서 말이다.


어느 순간 어느 곳에 있든지 눈만 감아도 사랑의 경험을 저절로 떠올릴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나는 우선 미래의 아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오든지 곳곳에 사랑의 기운이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려 한다. 아이가 시선을 두는 곳마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도록 오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더욱 섬세하게 살펴야겠다. 

달리는 본능을 타고난 아들
미주 한국일보 기사 전문

미주 한국일보 기사 바로가기

이전 09화 어떤 이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