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 기고 12
“이 단체는 시간 남는 엄마들이 뭐 하고 놀까 궁리하는 단체인 건가요?”
비영리 단체를 소개하다가 황당한 조언을 들어보긴 했지만 이런 오명(汚名)은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곱씹었다. 우선, 이 오명의 근본적인 이유는 주부가 담당하고 있는 가사노동의 가치가 시장의 조명을 못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가구 내에서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라는 이유로 합의된 가사노동은 한 국가의 GDP에 포함되지 않으며 무급으로 처리된다. 이와는 반대로 ‘철저한 자본주의적 접근’ 아래 연봉제 혹은 시간제 계약으로 회사와 맺어진 직무노동은 시장 가치를 인정받는다.
2023년 6월 27일 대한민국 통계청에서 ‘무급 가사노동 평가액의 세대 간 배분 심층분석(2019년 국민시간이전계정 개발 결과)'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가사노동의 소비와 생산 차이로 발행하는 생애주기별 적자, 흑자 분포와 이를 충당하는 자원의 재배분 흐름을 성별, 세대별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여성은 25세에 가사노동 생산이 소비를 넘어서는 흑자에 진입한 후 가정관리, 자녀 양육을 중심으로 가사노동 생산을 많게 유지하다가 84세에 적자로 전환된다. 또한 여성은 만 38세에 1848만원의 최대 흑자를 갖는데 이것은 만 38세의 여성이 연간 1848만원어치의 가사노동을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통계만으로 여성 주부의 가사노동에 포함되는 강도와 다양성을 모두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 38세 가사노동의 주 제공자로 자녀를 양육하며 파트타임 직장과 비영리단체 봉사로 하루를 채워나가는 나의 삶은 생각보다 촉촉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시장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을 알아봐 주는 가족 구성원이 곁에 있다면 말이다. 한 예로,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면서도 나에게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말을 건네는 남편은 동일시간에 청소, 요리, 정리정돈을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는 누군가의 역량이 아내라는 타이틀과 함께 당연히 장착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 준다. 말 한마디에, 눈빛 하나에 돈으로는 막지 못할 허탈한 마음의 구멍이 메워진다.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무급 가사노동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남길 수 있는 주부들은 가사노동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게다가 타인을 돌봐야 하는 삶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선 주부들은 용기까지 겸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돌봄의 선순환을 묵묵히 행하는 주부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말투에 당신의 예술성을 담아주시길, 아름답게 피어난 그 찬란함에 눈부심을 당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