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스님의 책은 글이 참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저자가 논란에 휩싸일 때 책을 버리진 않고 안 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아도 마음이 풀리면서 편안해지는 건 내가 소장한 책중에 그의 책이 유일한 듯하다.
친구, 직장 상사, 후배, 이웃 때문에 속상할 때 혜민스님의 책이 힘이 많이 되었다. 수양을 많이 한 스님도 사람들과 오해가 생기고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보면 보통사람인 나는 오죽하겠는가 하고 위안이 된다.
혜민스님이 부와 명성으로 삶을 어떻게 향유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는 힘들 때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마트 가는 길에 시시콜콜 이야기 한 기억과 시장에서 맛있는 간식 사 먹었던 소소한 추억이 생각난다 했다. 그런 기억은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삶이 괴로울 때 하나씩 꺼내어보는 서랍장같이 말이다. 혜민스님은 누구나 이렇게 따뜻한 등불 같은 기억으로 위안을 얻으며 삶을 헤쳐나간다고 말한다.
내겐 바다가 따듯한 등불 같은 기억일 것이다. 반팔 티셔츠 아랫부분을 길게 늘어뜨려 그 위에 몽돌을 잔뜩 올려 물속에 가라앉으면 바닷속 깊이 달려 다니던 기억, 해녀였던 할머니와 같이 나란히 물질했던 기억, 동생과 옷 벗고 수영하다 동생 옷을 잃어버려 동생은 바지만 입고 나는 윗옷을 길게 늘어뜨려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 여름이면 동생과 같이 앞바다에서 청각을 따면 할머니가 된장을 풀어 냉국을 만들어주시던 기억, 언제나 그 위치에 있던 해삼, 아직도 찾아갈 수 있을 듯한 해저 지형, 아침이면 들리던 몽돌 사이사이로 바닷물이 스며들었다 다시 몽돌을 뒤로 쏴아 쓸어가는 소리 등등 바다를 떠올릴 때의 기억은 늘 힘이 된다.
이제 내륙에서 살아갈 내 아들과 딸은 이런 기억이 있을 수 있을까. 그들 나름대로 따뜻한 등불 같은 기억들을 만들어나가겠지만 아들과 딸이 힘들 때마다 바다를 떠올리기를 바란다. 아빠와 같이 바닷가에서 모래 놀이하던 기억, 패들보드 타던 기억, 통발 낚시하던 기억 등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 그러나 애들 엄마는 바다를 싫어하고 숲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