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시작하는 B2B 비즈니스에서 자주 빠지는 함정 (1)
‘대왕볶음밥’이라는 간판을 달고 어마어마한 양의 볶음밥을 1인분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입니다.
A씨는 엄청난 양의 1인분 메뉴가 존재하는 가게에는 대식가 인플루언서들이 찾아 챌린지 진행하고, 그것을 통해 가게가 홍보되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에 스스로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느낍니다.
‘본 메뉴를 시간 내에 다 드시는 분께는 어떠한 보상을 드립니다.’라는 이벤트를 상시 진행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A씨는 요식업을 통해 고객들에게 기쁨을 줄 기대감에 가득찼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량으로 만들어도 맛도 비주얼도 지킬 수 있는 레시피를 실험해보려니 자취방의 부엌은 너무나 좁습니다.
큰 요리 공간을 대여하는데도 큰 비용이 들고, 대용량의 요리는 한번 실험에 드는 재료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 세월에 레시피를 만들고, 인플루언서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인테리어 디자인을 내고, 가게 공사를 들어갈지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또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경쟁사들이, 조사를 하다 보니 얼마나 많은지 대출을 받아 가게를 오픈한다고 해도, 이 많은 가게들 중 인플루언서들이 몇이나 우리 가게를 선택해줄지, 아니 한 명이라도 와주기는 할 지 걱정이 앞섭니다.
(또는 시작과 동시에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면서 왜 시장에 내 아이디어를 실현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지 알게 됩니다.)
내가 먹방 유튜브 채널을 만들자!
'기본적으로 실물을 만들어내는데 많은 비용이 드는 요리, 점포와는 다르게 유튜브는 휴대폰 카메라 하나로 시작할 수 있지 않던가?'
'어차피 고객 여정에 대해 조사를 해야할텐데, 내가 직접 고객의 역할을 해보면 내 사업을 기획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거야.'
'내가 어마어마한 팔로워를 직접 끌어모아서 이후에 음식점을 차리면 다른 인플루언서들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릴 필요도 없겠지?'
이러한 판단 끝에 A씨의 단기적 목표는
‘어마어마한 양으로 이목을 끄는 특별한 볶음밥 가게 만들기’에서 ‘먹방 유튜브 채널 개설 후 팔로워 10만명 이상 모으기’로 변경되었습니다.
외식업 창업으로 예시를 들었지만,
이는 B2B 비즈니스로 창업을 하시는 극초기 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대부분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 솔루션을 통해 효율이나 매출이 오를 것이라고 증명해낼 사례가 있어야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텐데, 처음 영업을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당연히 사례가 없다보니 세일즈가 막막해집니다.
백지에서 고객을 모으는 것보다 우리가 직접 고객이 되어서 우리 프로덕트의 효용성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고객의 일을 직접해보면, 제작자인 내가 고객 여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까지 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객들은 우리의 솔루션이, 무료체험 기간동안 그들에게 가격 이상의 매출 상승 또는 전체적인 원가 절감, 노동 시간 절약 등의 성과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의 고객으로 남지 않을 것 입니다.
고객 스스로가 우리 솔루션에 적응하고, 우리 솔루션의 효용성을 직접 체험한 후에야 우리의 B2B 비즈니스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객사가 우리 솔루션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우리가 직접 고객사의 제품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초반의 안정적인 캐시카우가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는 일을, 고객의 일을 직접 하는 것을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트레이너를 지원하는 SaaS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MVP는 스프레드시트나 워드, 카톡 등을 이용해서, 별도의 프로덕트를 만들지 않고 린하게 트레이너를 지원해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는 직접 트레이너가 되어보는 것과는 다른 방향입니다.
전문적인 다른 기업에 우리의 서비스를 보여주기는 아직 창피한 점, 부끄러운 점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첫 인상이 이렇게 결점 투성이여서야, 이후까지도 고객의 인식이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버그를 바로바로 고칠 수 있는 우리 팀이 먼저 오랫동안 직접 사용해보면서 최대한 오류를 잡아 시장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류 제작에 대한 지식이 없는 운동 선수가 스포츠 의류 브랜드를 론칭하여 큰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봅니다.
식품 공학에 대한 전문성은 없는 유명 보디빌더가 단백질 쉐이크 브랜드를 론칭하여 큰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봅니다.
요리는 할 줄 모르지만 음식 먹기를 아주 좋아하는 예능인이 요식업 브랜드를 열어 큰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봅니다.
대중의 눈에는 제조분야의 전문가보다 유명인들이 더 높은 빈도로 보이다보니, 일반적으로 제작자로서의 지식과 커리어를 쌓는 것보다 그것을 소비하는 입장에서 경험과 이미지를 쌓아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느낍니다.
A씨는 백종원씨처럼 음식에 대한 이해나 경험, 인사이트가 풍부해서, 그걸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대식가 먹방 유튜버들처럼 많은 양의 음식을 맛있고 시원스럽게 먹을 수 있는 위장을 갖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영상에 대한 전문성도 없고 전문적인 장비나 스튜디오 역시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A씨가 당장 올릴 수 있는 것은 그저 큰 음식을 파는 가게에 찾아가 휴대폰으로 음식을 찍으며 자신의 감상을 말한 영상 뿐입니다.
인사이트가 풍부하지 않은데, 영상의 만듦새도 좋지 않은 것을 보니, A씨는 금세 본인이 유튜버로 성공하는 것이 직접 대왕볶음밥을 만드는 것보다도 경쟁력이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 시킬만큼의 외식업에 대한 풍부한 인사이트를 쌓는 일, 영상 제작에 전문성을 쌓는 일, 그리고 영상에 맞는 장비 등을 모두 구비하는 데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고객 여정을 체험한다고는 하지만, A씨가 타겟으로 잡는 수백만 팔로워를 가진 먹방 인플루언서들이 작업하는 방식, 영상 소재가 될 가게를 고르는 방식은 전혀 다를 것이라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면서 이것이 과연 시장조사로서도 의미있는 일일지 의문이 듭니다.
게다가 이제는 자신이 직접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키워가려고 하다보니 대형 먹방 유튜버들이 협력의 대상이 아닌, 내가 시청자를 뺏어와야하는 경쟁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젠 그들을 찾아가 그 고객 여정을 알려달라고 한들 영업 비밀을 경쟁자에게 무료로 알려줄 리 없을 게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먹방 채널을 늘려보기 위해 공부해보려고 해도 ‘나는 결국 대왕볶음밥을 만들기 위해서 유튜버를 하는건데, 수백만원 들여 모션 그래픽 공부를 해야하나?’라는 고민과 함께 멈추게 됩니다.
결국 A씨는 요식업 창업과 유튜브 채널 개설이라는, 서로 다른 전문성이 필요한 목표를 함께 두고, 자신의 아주 적은 리소스를 어느 한쪽에도 집중하여 활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크리에이터, 요식업 창업자, 어느 쪽에도 정체성을 두지 못하고 모호한 포지션으로 시장 어딘가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기분을 느낍니다.
A씨가 겪은 일들과 비슷한 사례로는 아래와 같은 상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헤드헌터들의 헤드헌팅을 돕는 SaaS를 제작하는 것이 목표였던 팀이, 어느샌가 본인들이 직접 헤드헌팅을 해서 수익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가들의 저작 활동을 돕는 솔루션을 제작하려던 팀이, 직접 책을 출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
요가 강사들을 위한 맞춤 지원 서비스를 제작하려던 팀이, 직접 요가 강습을 열어 유료 요가 클래스를 진행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래와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A씨와 같이 소비자 도메인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경우
이는 고객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고객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이는 Product의 market Fit이 아닌 '나'라는 사람과 소비자의 직업 간의 핏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결국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발전되는 것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프로덕트의 완성도가 아니라, 실험에 참여하는 인원의 개인기입니다.
그리고 소비자의 직업에 필요한 능력을 공부하는 동안, 프로덕트를 발전시키거나 프로덕트 개발 역량을 쌓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됩니다.
A씨와 달리 소비자 도메인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경우
이미 기업에서 십수년간 쌓아온 경험을 프리랜서 자격으로 반복하는 모습이 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량을 발전시켜야하는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충분히 갖춰진 근육만 더 발달시키게 됩니다.
실제로 도전해보고자 했던 분야의 PMF를 찾기도 전에, 개인기를 통한 외주로 수익을 창출하면서 그것이 PMF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 외주, SI가 나쁘다 ❌
* 기존에 도전하려고 했던 아이템의 마켓 핏을 찾아볼 기회를 놓치게 된다. ⭕
* 기존에 하던 일을 고용형태만 다르게 반복하게 된다. ⭕
어느 쪽이든 내가 큰 맘 먹고 새로운 도전 속으로 몸을 던지던 때에 꿈꿔왔던 상황과는 많이 다른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유튜브 영상 제작 서적을 바라보던 A씨는 고민의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큰 1인분 볶음밥을 사람들에게 제공해서 즐거움을 준다.
성공한 유튜버가 되어서 역으로 가게를 차릴 생각을 하기보다
이 가치를 가장 소자본으로 해볼 수 있는 길을 고민해보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많은 밥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지?
군대, 학교, 교회 그리고... 외할머니댁!
A씨는 아직도 넓은 마당에 솥을 놓고 음식을 하시는 외할머니댁을 생각해냅니다. 또한 할머니께라면 많은 양의 밥을 해내는 노하우까지 배워올 수 있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할머니와 친척들께 사정을 설명드리고 주말마다 내려가 마당에서 할머니께 큰 솥에 요리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교통비와 할머니께 드리는 용돈 대비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몇가지 레시피가 추려질 때 즈음, A씨는 1만명 팔로워를 보유한 유튜버부터 수백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유튜버까지, 총 100명의 인플루언서들에게 초대장을 보냅니다. 할머니가 솥밥에 지어주시는 커다란 양의 1인분 볶음밥을 누가 가장 빨리 또는 많이 먹는지 대회를 하는 콘텐츠를 열어볼 예정이며, 시골까지 오는 교통편은 A씨가 마련하겠다고 말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응답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인의 크리에이터가 최종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고, A씨가 처음 목표했던 '대왕볶음밥' 콘텐츠가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A씨가 직접 유튜브를 시작해 모으려면 한참이나 걸렸을 규모의 구독자들이 콘텐츠에 반응해주었고, 이러한 사례들을 장표로 만들어 크리에이터, 또는 요식업 관계자 분들을 만나 피드백을 구하니 훨씬 뾰족한 피드백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A씨는 어렵게 뗀 첫걸음을 통해, 생각하는 것에서만 멈추지 않고, 그리고 당초의 목표를 잊지 않고, 여기까지 성취해낸 자신에 대해 대견함을 느끼면서 다음 스텝을 준비합니다.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고객의 입장을 직접 체험해보는 경험이 나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자금도 인력도 시간도 모든 것이 극도로 제한된 상태에서 가설을 검증해나가야하는 극초기 비즈니스 단계에서는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첫번째 우선순위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극단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팀이 이뤄야하는 목표를 우선순위대로 10가지 나열해서 적어보세요.
그리고 그 중 9가지는 쳐다도 보지 마십시오.
이 정도로 '집중'이라는 키워드가 강조되는 사업의 단계에서 '고객의 목표와 나의 목표를 착각하기'는 그것을 바로 잡기까지, 우리팀의 리소스에 많은 손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늘 주의하며 비전과 미션을 향해 나아가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