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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경 Jan 06. 2024

1. 의도했지만 의도치 않은 분열

사내 경쟁이 사내 전쟁이 되는 과정 (1)

AR 솔루션 제작 본부에 갑작스러운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한창 'AR 피팅 서비스'의 연구가 진행되던 어느 날, 기획팀장 A가 신설팀으로 발령받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본부의 전반적인 기획을 총괄하던 A의 자리는 당장 누가 와도 단기간에 채우기 힘든 공백이었기에 본부 전체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기획팀장의 업무 공백 문제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A가 새롭게 발령받은 신설팀의 목표가 'AR 피팅 서비스' 개발로 본부와 완전히 겹친다는 사실이 발표된 이후 해당 직군의 신규 인력들이 전부 신설팀으로 배정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심지어 본부에서도 늘 필요하다고 외쳐왔던, 패션 분야 전문가들까지 입사하는 족족 모두 신설팀으로 배정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AR 의류 피팅'에 관련된 모든 회사의 지원을 두고 본부와 신설팀이 다투게 되니, 두 조직은 모두 이제 'AR 피팅 서비스 개발'보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이겨서 사내 자원을 가져오기'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인재들을 다 데려가는 것도 모자라 자신과 손발을 맞추던 본부 직원들에게 밤낮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A가, 본부의 조직장들에게는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본부장 B의 걱정은 매일 커져만 갑니다.


임원진이 우리 본부를 대체할 조직을 만들고 나서 우리 조직을 서서히 접어갈 예정일까? 그러면 100명이 넘는 우리 구성원들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어떻게 되지?


 한편, 신사업팀장 A도 하루하루가 고통입니다.


A로서는 100명의 직원들, 수년간 쌓아온 데이터와 시스템으로 무장한 B 본부와 똑같은 목표를 두고 이겨야만 하는, 불공평한 경쟁을 강요당하는 기분입니다.


 게다가 원래 상사였고, 현재 직급도, 조직의 크기도 모두 위인 B 본부장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모든 상황들이 A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왜 나 혼자만 이 허허벌판에 떨어진 걸까? 좌천인가?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방식을 나로 실험해 보시려는 걸까? 그 실험이 잘 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되지?


우리는 골머리를 앓던 A와 B가 대표님을 찾아가 의도를 여쭙자 돌아오는 둘에게 대표님이 주시는 답변은 동일했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하며 두 조직 모두 발전해 나가길 바라네.



대표님은 왜 그럴까?


사실 대표님의 두루뭉술한 답변은 숨긴 것이 없는 진심입니다. 대표님은 B의 조직을 당장 닫을 생각도, A를 좌천시켜 퇴사시킬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A와 B 중 누가 더 중간 관리자에 맞는 인물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마치 제품을 두고 AB테스트를 하듯, 조직을 두고 AB테스트를 한 뒤, 더 결과가 좋은 쪽을 택하려는 생각일 뿐입니다.


 원래 경쟁은 서로를 발전시키는 법이니 이대로 둔다면 두 명의 리더 꿈나무도 자연히 성장할 게 분명했고,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방향에 대한 답을 찾는 문제도 해결될 일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예전부터 내부 경쟁이 활발하기로 소문난 경쟁사 Y가 요즘 투자사들에게 큰 기대를 받고 있다는 기사에서 'Y사는 활발한 내부 경쟁을 통해 조직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긴장감을 조성하는 동시에, 개개인의 승부욕을 북돋아주어 더욱 열정적으로 일하게 만들었다.'는 문장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던 차였습니다.


 대표님은 두고 지켜만 보면 잘 될 일만 남은 것 같은 이 결정에 스스로 매우 만족하며, 앞으로도 이 상황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며 누가 이기나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A와 B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선의의 경쟁'이라는 상황에 맞지 않는 답변을 들은 A와 B는, 사실상 대표님이 이미 무언가 결정을 내려두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솔직하게 말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비어있는 부분을 경험에 기반한 추측으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A와 B는 모두 자연스럽게, 그간 성과를 내지 못하고 회사에서 사라진 관리자들, 그리고 빈자리에 다시 안정된 사람이 오기까지 실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고생하던 그 구성원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표님의 성향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이 '경쟁'에서 밀리는 순간 나의 커리어에 큰 오점이 남는 것뿐 아니라 나의 당장의 생계와 사회적 위치 보장 자체가 불투명해지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대표님에게 확신을 주는 새 리더가 오기까지 명확한 방향성 없이 방황하며 실무에 집중하지 못할 나의 구성원들을 생각하니 반드시 상대 조직을 이기고 생존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데스 게임은 친선 경기가 될 수 없다.


 A와 B는 모두 도대체 이 회사는, 협력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왜 이렇게 의도적으로 분열시키는가에 대해 이해도 가지 않고 분노가 일지만, 우선은 내 조직의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그런 의미 없는 투정은 털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어떻게 상대 조직을 무력화시키고 우리 조직을 안전히 방어할 수 있을까?


스포츠 세계에서는 승자는 모든 것을 얻지만 반대로 패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허진, 『내부 경쟁의 득과 실』, LG주간경제, LG경영연구원, 2006,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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