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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미 Sep 30. 2024

14. 시평선時平線 너머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 아침, 우리는 그동안 촬영하고 편집한 동영상을 마침내 공개했다. ‘질병관리밴드’라는 제목으로 학교 홈피와 ‘청소년 마음연구소’ 홈피, 선생님의 유튜브에 올렸다. 블랙이 자신의 유튜브에도 올려주었다. 우리 반의 폰 어플러인 해피 최이준은 편집을 마무리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며, 엄청 생색을 내고 거드름을 피워서 웃음을 안겨주었다. 평소에도 우리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이준은 꿈이 해피라고 했다. 그리고 해피라는 단어만 들어도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선생님은 박사 논문이 통과될 때까지 계속 중2 담임을 맡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준이가 말했다.

  “선생님, 공부 좀 열심히 하세요. 그래야 박사가 될 수 있잖아요.”


  박사보다더좋은건♬영원히포에버중2♬

  부러우면지는건데♬나는중2가부러워♬  

   

  어설프게 블랙의 몸짓을 흉내 내는 선생님을 보며 우리도 함께 장단을 맞췄다.   

   

  쿵딱♬쿵따다닥♬쿵따닥♬쿵딱♬

  쿵딱♬쿵따다닥♬쿵따닥♬쿵딱♬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튜브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시침을 뚝 떼고 방학식을 했다. 그러나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고 호흡이 딱, 멈춰버릴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블랙의 열정이 내 혈관을 타고 스며들어와 심장을 뛰게 했다. 누가 보기는 할까, 조회 수는 얼마나 될까, 댓글은 뭐라고 달릴까, 설마 악플이 달리는 건 아니겠지……. 나는 가슴골을 꼭꼭 눌렀으나 심장이 마구 나대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방학식이 끝나고 동준이가 전학을 간다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다. 동준이 아빠는 2년 동안의 긴 항암 치료 끝에 드디어 완치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할머니가 계신 고향, 봉평으로 간다고 전했다. 동준의 눈가에 드리워진 그늘의 정체를 알고 나니 순간, 나대던 심장이 딱 멈추는 것 같았다. 동준은 지역의 농업·생명과학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프로 농부가 되고 싶다며, 벌써 농부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동준에게 전학을 가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아빠가 좋다는데 내가 싫을 리가? 난 아빠만 있으면 뭐든 다 좋아. 놀러 와라, 강릉행 KTX 타고 평창에서 내리면 돼. 혹시라도 역방향 타고서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느니 그런 헛소리하지 말고.”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느니 그런 헛소리하지 말라고? 동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저건 내가 꿈에서 피비에게 쓴 편지 내용인데, 동준이가 어떻게 알고 있지? 혹시 내 다이어리를?

  “야, 양동준! 너 내 꿈 훔쳐봤지? 이 꿈 도둑아!”

  “꿈을 훔친다고 훔쳐지냐? 한설주, 파수꾼은 먼 데서 찾는 게 아니야. 피비 대신 나에게 편지를 쓰는 건 어때?”

  나는 동준을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었다. 동준은 책상 사이를 이리저리 넘나들며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결국 내가 지쳐서 헐떡이며 째려보자 동준이 말했다.

  “너, 작가가 되고 싶다며? 이효석이라는 소설가 들어보긴 했냐? 9월이면 남안동천을 낀 메밀밭 풍경이 아주 그냥 죽여준다! 우리 집이 바로 거기야. 그런데 우리 할머니 메밀전 맛은 더 죽여준다!”

  "내가 너 전학 간다니 오늘은 특별히 봐준다."

  나는 싸움을 멈추고 사물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로 몰려 들어왔다. 가슴에 달린 이름표 색깔을 보니 중1이었다. 그래도 2월까지는 우리 교실인데, 마치 우릴 투명 인간 취급하며 개념 없이 떠들어댔다.

  “2반 교실 꾸졌네. 2반 안 됐으면 좋겠다.”

  “교실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야, 근데 교탁 밑에 이상하게 생긴 공이 있어.”

  “무식하게, 이상하게 생긴 공이 뭐냐, 럭비공이잖아.”

  “무식하다고? 넌 얼마나 잘났냐.”

  “에잇, 얼굴에 맞았잖아. 저 새끼가…….”

  뭔가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다. 이미 럭비공은 창가에 놓인 천일홍에 맞아 화분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흙모래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미친놈아, 내가 너 언젠간 사고 칠 줄 알았다.”

  “내가 미친놈이면 넌 또라이다.”        


   

  우리는 얼른 럭비공을 챙겨서 교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어디선가 블랙이 툭 튀어나올 것 같아서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블랙으로 인하며 나도 시간의 리듬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 리듬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나는 다이어리에 시간을 꽁꽁 가두어 놓았고 시간을 불러오는 주문도 알고 있다.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둑한 계단을 내려가려니 어디선가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그 침묵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쟤들도 중2병을 앓겠지?”

  나의 혼잣말에 앞서가던 양동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랩으로 답을 대신해 주었다.   

  

  툭하면중2병이래♬병맛이라고전해줘♬

  우린아직도성장중♬성장통이라고불러줘♬


  동준은 여전히 공을 툭툭 차고 받으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그 뒤로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린 각자의 생각에 잠긴 듯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교문을 나서자 갑자기 환유가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큰 소리로 불렀다.

  “환유야, 어디 가?”

  “별 만나러, 별 보고 싶으면 따라와!”

  환유는 사료 봉투를 높이 흔들며 공원 쪽으로 뛰어갔다. 나도 정7각형의 선을 요리조리 피하며 별을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어느새 따라왔는지, 조금 전 우리 교실에 와서 화분을 깨뜨린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몰려왔다. 그리고 우리도 별 만나러 가고 싶다며 정7각형의 선을 무시한 채 나를 앞질러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은색 선을 밟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걱정스러웠으나 그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갔다.

  그 순간, 나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시간이 떠나가는 소리, 그리고 또 다른 시간이 달려와 시평선時平線에서 만나는 소리, 딸깍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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