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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미 Aug 29. 2024

중2병이 뭐예요

  “야, 문설주! 안 들리냐?”

  못 들은 척하고 버티다가 반복하여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그리고 나도 질세라 맞장구를 쳤다.

  “문설주가 아니고 한설주라고, 양동이!”

  양동준은 묘기를 뽐내듯 럭비공을 툭툭 차고 받으면서 교문을 통과했다. 동준은 초등학교 때, 내가 문설주가 뭔지도 모를 때부터 나를 문설주라고 부르며 놀리곤 했다. 그때부터 이제 막 중2가 된 지금까지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설주라고 불러댔다. 이름으로 별명을 지어 부르는 건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유치한 짓인데, 대꾸하기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듣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동준은 복도에서도 계속 공을 차며 따라왔다. 동준과 티격태격하느라 교실 내 자리에 앉고 나서야, 오늘까지 희망하는 동아리 부서를 적어내라고 한 것이 생각났다. 신청서를 보니 작년에 없던 ‘제과제빵부’와 ‘웹툰부’가 있었다. 쭉 훑어보니 맨 아래에 ‘질병관리부(가제)’라는 동아리도 있었다. 

  ‘뭐지? 팬데믹 시대도 거의 막바지인데, 아침마다 체온 측정이나 마스크 검사를 시키려나?’ 

  교실을 둘러보니 어느새 분위기가 양동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데, 에너지는 반대인 것 같았다. 이런 현상을 부력이라고 하는 걸까……. 동준은 여전히 공을 차서 머리로 받았다가 무릎으로 다시 띄우며, 자랑도 아닌 걸 자랑인 양 떠벌리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엄마가 날 서예 학원에 보냈어. 집중해서 붓글씨를 쓰다 보면 좀 차분해질 거라고. 그런데 우리 학교 산만한 애들은 거기 다 모여 있더라. 분위기가 장난 아니야. 시너지 효과 알지? 내 산만은 산만 축에도 못 껴.”

  동준은 끊임없이 주절대며 발로는 공을 차고 받으면서도 손은 과자 봉지와 입 사이를 계속 들락거렸다. 다혜는 여전히 주변 환경엔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폰만 들여다봤다. 주름 하나 없는 하얀 셔츠 깃은 다혜 얼굴에 반사판이 되어주었다. 그때, 음표와 쉼표가 서로 티키타카 하듯 경쾌한 리듬의 터키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벨 소리에 나는 가방에서 필통을 꺼냈다. 커다란 2층 필통에는 색색의 필기구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벨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흰 셔츠를 단정하게 입은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국어 담당인 선생님은 뭐가 그리 바쁜지, 들어오자마자 대뜸 “‘제과제빵부’와 ‘웹툰부’는 어떤 동아린지 잘 알지?”라며 설명을 생략하고 바로 다음 말을 이어갔다. 

  “‘질병관리부’는 내가 담당하게 될 새로운 동아리야. 이번에 내가 교육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갔거든. 논문의 주제는 청소년 심리, 그중에서도 중2병에 대한 실태를 조사 연구하려고 해. 그래서 우리 동아리 활동을 교육대학원 부속인 ‘청소년 마음연구소’에서 지원해 줄 거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던 양동준이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중2병은 질병인가요, 그렇다면 코로나19처럼 질병관리청에서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주 바람직한 질문이야. 바로 그런 걸 토론하려는 거지. 그래서 가제라고 했잖아. 가제란 아직 명칭을 정하지 않았단 뜻이야. 동아리가 구성되면 회원들과 함께 동아리 이름부터 다시 정할…….”

  선생님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질문이 쏟아졌다. 뭐든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나는 재빠르게 메모를 시작했다.  


  -중2병은 중2가 되면 100% 감염돼요?     


  -중2병의 판단 기준은 뭐예요, 코로나처럼 PCR 검사를 하나요?   


  -중2병에 걸리면 어떻게 관리해 줄 건데요?  


  -격리도 할 거예요?  


  이제 막 중2가 되어서인지 관심도 많았고 발상도 신선했다. 새삼 내가 중2가 되었다는 현타가 왔다. 덩달아 호기심도 발동했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우리 반 전체가 ‘질병관리부’ 회원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건 ‘청소년 마음연구소’의 새로운 프로젝트거든. 교장 선생님께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다고 했어. 체험활동도 할 계획이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질 거야. 물론 강제는 아니야, 권장이라는 거지. 원하지 않는 사람은 손들어 봐.”

  서로 힐끔거리고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손을 든다면 나도 따라서 손을 들 텐데……. 나는 베프 최유리와 약속한 동아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손을 들 용기는 없었다. 

  “상담 선생님도 우리와 함께할 거야.”

  “그럼 섹스 이야기도 해요?”

  비난하는 소리와 우와, 하는 함성이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그러자 동준이 불만 가득한 말투로 대꾸했다.

  “왜 그래? 성교육이라고 하면 괜찮고 섹스라고 하면 야해? 촌스럽기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환유가 또박또박 의견을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할 활동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그러면 선택에 도움이 될 거예요.”

  역시 환유는 똑똑 소리가 날 것처럼 똑똑했다. 환유 덕분에 환 씨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외자 이름인 ‘유’보다는 다들 성까지 붙여서 환유라고 불렀다. 

  “격주로 토요일에 모임을 할 예정인데, 우선 이번 토요일에는 동아리 명칭을 정하고 임원도 뽑을 계획이야. 너흰 무슨 대단한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생각이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돼. ‘질병관리부’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점심시간에 개인적으로 와서 알려 주기 바라.”

  어쨌든 나는 ‘질병관리부’에는 별 관심 없고, 1학년 때는 독서부였다. 독서부에서 나는 책 읽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갔다. 책 속에서 나는 앤이 되었다가 죠가 되기도 하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되어 이프섬에 갇혀 탈출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5개월 전쯤에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피비를 만났다. 나도 피비 같은 파수꾼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피비에게 편지를 쓰며 ‘다이어리 꾸미기’를 시작했다. 다꾸를 하려면 다양한 필기구와 장식스티커들이 필요했다. 나는 많은 시간과 용돈과 정성을 다꾸에 쏟게 되었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시간이 현재에서 과거로, 또는 미래로 넘나드는 느낌이 좋았다.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창밖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왔다. 엄마 표현대로라면 항상 붕붕 떠다니는 듯한 내가 유일하게 중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뿌듯했던 순간이 좋아서 나는 유리와 함께 도서부에 다시 가입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희망부서 선택란을 비워두고 이름만 적은 신청서를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선생님과 상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종례 시간에 들어온 선생님 손에는 이미 동아리 신청서가 들려 있었다. 

  ‘어, 언제 걷어 갔지?’

  나는 얼른 책상 서랍에 손을 넣어 신청서를 찾아보았다. 잡히는 것이 없었다. 고개를 숙여 서랍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쪽 깊은 모서리에 박힌 사탕 껍질 외에는 텅 비어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양동준이 신청서를 모아서 가지고 왔어. 그래서 우리 반은 만장일치로 ‘질병관리부’에 가입하게 됐다. 다른 의견 있니?”

  나는 고개를 돌려 대각선으로 뒤에 앉은 동준을 쏘아보았다. 동준은 입 모양으로 ‘왜?’라고 물었다. 나는 책상 밑으로 손을 내려 주먹을 꽉 쥐어서 흔들어 보였다. 동준은 내 행동을 못 본 척하며 앞만 바라보았다. 아, 도서부는 어쩌나, 유리랑 약속했는데……. 난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면서도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동준에게 다가갔다. 묻지도 않았는데 동준은 술술 털어놓았다.

  “선생님이 나에게 신청서를 걷어오라고 했어. 다 걷었는데 넌 자리에 없고, 서랍에 신청서만 삐져나와 있어서 보니까 이름도 썼더라. 그래서 네 걸 맨 위로 올려서 선생님에게 가지고 갔고, 내가 한 일은 거기까지야. 뭔 문제 있어?” 

  동준은 팔을 양쪽으로 벌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돌아섰다. 듣고 보니 동준은 잘못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나는 유리와 함께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느라, 깜박하고 선생님에게 가지 못했다.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나는 ‘질병관리부’에 가입이 되었다. 아직 No라고 말할 기회는 남아 있었으나 용기가 없었다. 모두 함께 가는 길이 쉽고 편한 길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받은 유리로부터의 톡은 내가 ‘질병관리부’에 가입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쏘리, 쏘리, 나 배구부에 가입했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ㅠㅠ  




       #1     

  피비야, 너를 만난 지 벌써 5개월째야. 너를 알게 된 후 나는 꿈을 꾸면서 편지를 써. 스포츠 경기를 중계 방송하듯, 내 꿈을 너에게 라이브로 전하는 거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이젠 너도 알고 있지?

  재미없게 꿈에서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오늘이 중2 첫날이래. 그런데 벽, 바닥, 사물함, 책상이랑 의자가 모두 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 모든 게 훤하니 다 들여다보여. 으악, 교무실과 화장실까지도 투명이야. 선생님 책상 서랍에는 만화책과 사탕이 들어 있어. 나는 언제나처럼 펭귄 인형을 꼭 껴안고 있지. 

  꿈이라면 구름 튜브를 타고 하늘을 둥실둥실 떠다니거나, 바다 위를 슬릭백 스텝으로 걸어 다니는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게 뭐람, 겨우 교실이라니, 이렇게 시시한 게 무슨 꿈이야? 아, 터키행진곡은 왜 꿈에서도 나오냐고. 그런데 웬 남자가 교실로 쑥 들어와. 걸을 때마다 어깨가 건들건들 흔들리는 게 어딘지 좀 껄렁해 보여. 그런데 담임이래, 헐!

  우리 1년 동안 열심히 싸워보자.

  싸워보자니, 그것도 열심히? 지금 선생님이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거야? 이어서 입학식을 해. 나에게도 후배가 생긴다는 거지. 역시나 입학식, 방학식, 무슨 무슨 식들은 교장 잔소리가 반 이상을 차지해. 입학식이 아니라 교장의 말씀 대잔치야.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는 교장의 한마디는 앞의 말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길게, 끝날 듯하다가 한참을 다시 이어져. 우리가 학원에 다니는 것처럼 교장들도 단체로 ‘말씀 학원’에라도 다니는 것 같아. 그래도 입학식이니까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라도 하리라 기대하고 있어. 급식 디저트로 탕후루를 준다든지 하는 거 말이야. 그런 걸 기대하건만 다 거기서 거기 Ctrl+C, Ctrl+V. 우리에겐 창의력, 상상력을 기르라면서 선생님들 말이나 행동은 다들 똑같아.

  이게 뭐야? 정말 재미없다. 피비야, 현실보다도 못한 꿈도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빨리 꿈 깨고 현실로 돌아갈 테야, 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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