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관해서
우리는 언제부턴가 예술에 질려 버리고 말았다. 맨날 무슨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것을 보여준 뒤 예술이라 하고 이것의 숨은 의미를 조목조목 설명한 뒤 억 소리가 나는 가격표가 붙이는 것을 보고 우리는 개소리하네 하며 어이없어하고 화까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저딴 게 하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예술에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것 가지고 별에 별 의미부여를 하내 하고 말하며 그것이 억 소리 나는 가격이 된 것에 분노하며 말이다.
우리가 예술에 질려버린 가장 큰 이유는 예술이 상품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상품으로써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런 데에서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데 가치 있다고 우기는 꼴이니, 만일 가격표를 보지 않고서 그저 작품을 감상한 뒤 그런 의미를 내포한 거다. 설명한 거면 그럭저럭 듣긴 들었을 것이다. 동의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분노하거나 비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술이 제 값어치를 못하는 아주 쓰레기인 상품으로써 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말이다. 예술을 그저 예술로서만 바라본다면 모든 것은 저마다의 의미와 감동과 생각할 거리 의문을 줄 것이다.
그런데 예술은 필연적으로 상품화되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애초 돈을 줘야 작품이건 무엇이건 많이 그리고 잘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정녕 우리가 가격표를 보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예술에 호의적이게 될 수는 없다. 왜냐면 예술을 결국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다양한 것을 담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 하기에 그것은 의미이나 그러한 의미는 아름다움일 수도 재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취향은 계속 변화하고 유행 또한 변화한다. 개개인의 취향은 각기 다르기에 누군가에게 엄청난 감동을 줄지라도 누군가에겐 충분한 감동이 아닐 수 있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재미를 줄지라도 누군가에겐 재미가 하나도 없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저 다수가 가치 있다 여기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아니다. 애초 가치와 생각은 제각 기인 것일 뿐이다.
그리고 유행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새로운 예술사조가 등장한다고 그 이전 사조가 가치가 없어지게 되는 것일까? 형편없이 되어 버리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고흐를 좋아하고 모네를 좋아한다.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와 같이 수많이 유행이 생기고 또 소멸한다. 그리고 그러한 유행이라는 틀 안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최대를 발휘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것을 극찬하고 호평할 것이다. 모든 문화는 그렇게 역동적으로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리고 그건 예술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가치가 퇴색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옛날 고전을 읽을 때 하나도 이입이 안 되지 않던가? 그래서 중요한 것은 결국 모든 것은 지나버리고 변한다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면 별로이고 그래서 언제나 예술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역동성을 지닌다.
예술은 결국 기술이다. 사람이 본인이 바라는 바를 표현해 내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미술이라는 것은 각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잘 표현해 내는 것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이상이나 그러한 이상을 깨고 뛰어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아름다움은 의미이다. 결국 각자가 표현해 내는 바이자 느끼게 하고 싶은 바이니, 재미도 의미다. 예술을 그러한 의미를 즐기는 것과 얼마나 잘 즐기냐 이다. 누군가가 즐겨주기를 바라고 그런 즐김을 더욱 잘 느끼도록 표현해 내는 것이다. 자연은 아름다우나 그것은 꾸며낼 수 없기에 기술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술이 될 수가 없다. 각자가 마음속에 품은 이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도달하게 되는 것. 그러한 일련의 과정은 충분히 예술일 것이다.
우리가 결국 예술에 정답을 들이미는 순간 되려 그 의미는 사라질 것이다. 마치 국어시간 답이 없다 하면서도 답을 정해놓았듯이 우리가 예술을 즐길 수 없도록 할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다. 대중성만이 "진짜" 예술인 것 마냥 또는 전문성만이 "진짜" 예술인 것처럼, 내가 질문 하나 하겠다. 라면이 맛있다고 스테이크가 맛없는 게 되던가? 반대로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라면이 맛없던 것이 되던가? 스테이크가 비싸다고 라면이 싸다고 시가 함축적이라고 웹소설은 재미위주라고 그렇다고 해서 한쪽이 더 저급하고 한쪽은 더 고급진 게 아니다. 진입장벽이 높다고 또 힘들다고 또 희소하다고 그것이 고급진 것은 아니다. 물론 힘든 만큼 보람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다른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신에게 두 가지 모두 기쁨 아닌가? 라면도 맛있다. 그러나 아주 비싼 요리도 맛있을 것이다.
그것은 비율이다. 그날그날의 상태에 따라 순간에 따라 당연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고급지다 또는 저급하다 그러한 구분은 되려 우리는 가두는 속박이 된다. 언제나 세상은 연속적인 스펙트럼이다. 각 부분 부분이 서로 연결되고 얽히어 가며 순간순간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 낸다. 언제나 저급이 있기에 고급이 있고 고급이 있기에 저급이 있다. 저급은 열등하지도 고급은 우월하지도 않다. 세상 모든 것은 서로가 있어서 그 가치가 있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의미는 서로의 의존해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지난 것이라 무가치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치는 그리 정의될 수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고 선호하는 것이라도 매번 그것만 한다면 당연 고통스러울 것이다. 성향의 차이이고 질렸냐 안 질렸냐 이다. 매일 같은 걸 먹고 매일 같은 걸 보면 아무리 좋아하고 선호하는 것이라도 매번 그것만 한다면 당연 고통스러울 것이다. 순간순간들은 되려 그것들이 순간이기에 아름답고 특별하고 의미 있고 가치를 갖게 된다. 순간이기에 아름답고 원하고 바라고 그리워하게 되는 그날의 향기 기분 마음 감촉이 분위기가 분명 존재할 따름이다. 그것이 한순간의 정점이기에 오로지 그러한 희소성으로써 말이다.
나는 그런 장면을 많이 봤다. 어떤 사람이 자기는 이게 제일 좋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이 아 알못이네 하면서 그 사람에게 왜 그것이 최고가 아닌 지 열심히 그리고 열렬히 설파하는 모습을 말이다. 아마 타인이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 본인이 최고라 생각하는 것이 밀려나기에 그리 한 것일 것이다. 모두에겐 그 자신의 별이 있다. 본인만의 별이 있다. 그러니 비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나의 별을 바라보며 살면 될 뿐이다. 저 사람의, 저들의 별이 어떠하든 나의 별은 나의 별일 뿐이고 남과 비한다고 그 빛이 바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별을 남의 별과 자꾸만 맞추려고 한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리 해야 될 이유도 없다. 가치는 수학과 다르다. 동일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각자의 생김새가 다르듯 가치도 그렇다. 가치는 굳이 남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가치는 누가 뭐라 하든 가치이기 때문이다. 별은 다른 것에 의해서 빛나지 않는다. 별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써 스스로 밝게 타오를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그런 밝게 타오르는 스스로의 별로써 세상을 비춰 나의 눈으로써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