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차

언제나 알코올 꿈나무

by 글쓰는 달


나는 술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들어오고 배운 탓도 있지만 내가 직접 스스로 테스트해 보니 나는 그냥 술을 못 먹는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먹어 본 술은 일단 맛이 없었다. 초딩 입맛을 가진 나는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신 날도 잊히지 않는데, 술은 정말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어른들의 세계는 이상해’란 기분이었다. 아마도 내가 원하고 궁금해서 마신 것보다도 강압적으로 마시게 된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지만 어렸을 때는 ‘나 스스로 나의 한계를 넘어보리라’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체력도 부실하고 운동신경도 없는 내가 감히 체육활동을 하는 동아리에 자진하여 가입을 하였다.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잘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체력이 좋은 분들과 저녁식사나 모임을 하게 되면 당연히 알코올도 함께 먹어야 했는데 나는 그게 참 힘들었다.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아서 안주나 축내거나 조용히 구석에 앉아있기를 고수했는데 어느 날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선배에게 면전에서 싫은 소리를 듣고 그가 보는 앞에서 억지로 소주 한 잔을 다 마셔야만 했다. 맛없는 것을 먹는 것도 싫었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내가 억지로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함이 눈가에 맺힌 상태로 숨죽여 울었다. 당황한 선배는 나를 데리고 나가서 ‘언니를 이렇게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니’ 등등 나를 웃겨주려 노력했지만 그 뒤로 나는 정말 술이 더 싫어졌다.

성인이 되었다는 설렘으로 친구들과 가끔 술을 마실 기회가 있어도 ‘나의 의식을 잃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딱 한 번 주량을 테스트해보겠다고 막 마셔대고 필름이 끊겨본 이후로 다시는 술을 과하게 먹지 않게 되었다. 그 후론 기나긴 공부를 해야 했고 사람들 만날 일이 없기도 했고 딱히 술이 좋지도 않아서 한동안 전혀 마시지 않았던 것 같다. 직장에 다니게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 조금씩 배우기 시작해서 실력이 높아질 만하니 우리 아가들이 내게 찾아와서 10달 동안 금주하고, 출산 후에는 모유수유를 해야 해서 금주하고, 돌 이후에는 나 혼자 아이들을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되어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갑자기 아프거나 돌발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운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야 했다.

이렇게 친해지기 쉽지 않은 알코올 녀석을 원 없이 만났던 때가 있었다. 바로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 여행을 갔을 때이다. 아이들은 잠시 맡겨두고 나는 우리 부모님의 딸 역할만 하면 되는 감사한 시간이었는데, 그 기간 동안 매일 맥주 한 캔 이상은 마신 것 같다. 식사하면서 마시는 맥주가 얼마나 맛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맙소사). 너무 과하지 않은 양의 술을 즐거운 기분으로 천천히 마시는 것은 아주아주 행복한 일이었다. 주량이 금세 늘지는 않았지만 알코올에 지배당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한 것으로도 아주 기뻤다. 동생의 가이드 덕분에 다양한 종류에 대해 알게 되고 냄새를 맡거나 아주 조금 시음을 해볼 기회가 생겼고 내가 좋아하는 술의 종류도 구체적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아직도 잘 마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멀었지만 그래도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는 전보다 자신 있게 말하고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익숙한 것에 머무르면 새로운 것은 얻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장 건강을 위해 막걸리를 골라와서 마시고 있다. 억지 분위기에서 마셨던 꼬랑내 대신 즐겁고 행복한 맛이 난다. 이렇게 알코올 유망주로 커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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