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 커피 빛 재킷
다른 날보다 어쩐지 의욕이 가득한 오전을 보냈다. 하루의 기분은 하늘의 상태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하늘이 맑고 높으면 하다못해 세탁기라도 한 번 더 돌리고 싶을 만큼 의욕이 마구마구 넘친다. 하지만 비가 오거나 특히 회색빛으로 날이 흐린 날은 방전된 배터리로 겨우 전파를 수신하는 휴대전화처럼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빨래를 널기에 뽀송한 날도 아니었고, 아이 등교를 돕는 길은 생각보다 쌀쌀해서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이 막 머릿속에서 착착 정리가 되고 쉴 틈 없이 막힘 없이 술술 진행이 되었다.
오전 일정을 소화하는 도중에 가을 옷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다. 작년 말을 마지막으로 와보지 못한 옷가게에는 어느새 가을빛으로 가득했다. 진열된 여러 스타일의 옷들 중에 보기에 예쁜 것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내게 맞는 옷을 찾으려고 애썼다. 카키색 야상 점퍼를 사고 싶었지만 비슷한 색감의 트렌치코트가 있어서 내려놓고, 신축성이 없는 바지는 불편하니까 내려놓고, 너무 짧거나 통이 좁은 치마는 또 내려놓으며 지난날 동안 스스로 모은 데이터에 기반해서 옷 몇 벌을 남겨 계산대로 갔다.
내일쯤 집에 도착할 큰 아이의 야상점퍼와 커플룩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아까 본 카키색 외투가 자꾸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단정한 재킷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같은 디자인의 베이지색보다 연한 믹스 커피 빛 재킷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동안 나 스스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 외면을 가꾸지 않았던 지난 몇 년을 자각했고 기능성보다는 심미성에 좀 더 무게를 두어 살아보기로 작게나마 결심을 했던 터였다. 평소 즐겨 입던 스타일이 편하고 익숙했지만 스스로 조금은 불편하지만 단정하고 예쁜 옷을 고른 것이 뿌듯했다. 그리고 따뜻하고 연한 브라운 컬러가 내게 잘 어울려서 기분이 좋았다.
다음 일정 때문에 직접 입어 볼 시간이 없어 눈대중으로 산 두어 벌의 옷이 내 예상과 다른 핏을 보여주어 당분간은 못 입을 것 같아 아쉽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옷을 사고 나니 이젠 신발도 사고 싶어 졌다. 이렇게 야금야금 하나씩 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연말쯤엔 지금보다 꽤 달라져있지 않으려나 하는 기대에 콧바람이 났다. 부디 이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