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버킷리스트
일상을 지내다 보면 지치고 고단함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나를 지탱해주고 기운을 주는 것 중 하나는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원들을 꺼내보는 것이다. 거창하게 ‘소원’이나 ‘버킷리스트’라고 이름 붙이기엔 쑥스럽지만 그냥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 정도의 목표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직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달력에 나오는 풍경을 직접 느껴보기’이다. 지금은 귀여운 캐릭터나 예쁜 일러스트로 되어 있는 달력이 많이 나오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춘하추동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된 달력이 많이 있었다(요즘은 전통 있는 갈빗집이나 한정식집 정도 가야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쨍한 느낌의 대비를 살려 새빨갛고 새파랗게 극적인 보정을 준 그 사진들이 촌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연을 통해 내가 받는 감동이 크게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 달력 속 풍경을 직접 느끼고 만져보고 싶어 졌다. 예를 들면 2월에는 제주도에 유채꽃을 보러 가고 싶고, 10월에는 불국사에 가서 눈이 아플 만큼 새빨간 단풍들 사이를 거닐고 싶었다. 꼭 달력이 아니더라도 입장권이나 도록에 남겨지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속에 들어가 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그래서 조만간 있을 가족여행지를 정하는데 고민이 생겼다. 가을이다 보니 경주에 가서 분황사 모전석탑과 불국사를 보고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남이섬에 가서 수많은 나무 사이에 파묻히듯 산책하고 싶은 마음도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 곳 모두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과 다녀온 곳이라 귀여운 내 아이들과 함께 가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남편과 의논 끝에 이번 여행지는 결국 ‘경주’로 정했다.
일정이 나오고 나니 그다음 준비는 쉬워졌다. 몇 주 전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예쁘고 재미있는 숙소부터 소박한 곳까지 검색을 해봤지만 우리가 원하는 날짜는 대부분 예약 완료된 상태였다. 고민하던 끝에 단출하지만 믿을 만한 숙소를 생각해냈고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해보았다. 역시 웹상으로는 예약이 대부분 찬 상태였다. 하지만 ‘홈페이지만 믿지 말고 일단 도전하자’는 마음으로 숙소에 직접 전화를 했다. 전화로 문의했더니 아직도 비어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숙소 예약을 마쳤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하기 전 아이들에게 경주와 관련된 영상들을 보여주었다(너튜브님 감사합니다!). 여러 경주 유적 중에서 유독 첨성대와 석굴암에 큰 관심을 보이던 아이들은 귀가한 아빠에게 자기들이 알게 된 것들을 설명하고 칭찬받고 싶어서 바쁘게 움직였다. 또 10년 전 친구와의 여행을 위해 사두었던 가이드북을 꺼내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함께 컬러링을 할 수 있는 책도 주문해두었다. 내 아이들과 함께 만끽할 경주의 가을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