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평소에 잘 사 먹지 않던 초코 과자의 봉지를 뜯었다. 과자 겉면에 아몬드 조각도 묻어 있고, 다른 봉지는 톡톡 터지는 식감의 과자도 묻어있어서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과자이지만 달콤한 맛에 아이들이 익숙해질까 봐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사 먹지 않았는데 아이들의 요청으로 오래간만에 사서 외출 때마다 한두 개씩 가지고 나온다. 오늘도 네 명이 함께 하나씩 나누어 먹다 보니 양 손에 하나씩 쥐어주고 나니 어느새 한 봉지가 텅 비어버렸다. 아니 벌써?
이 과자를 살 때 겉 상자의 크기와 그림, 과자 이름을 보고 큰 고민 없이 구매했다. 손에 잡아보니 익숙한 그 굵기와 감촉이었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 속에 퍼지는 맛도 예전 그대로였다. 그런데 정말 이 개수가 맞았나? 분명 비닐을 쥐었을 때 느낌은 전과 다른 느낌이 없던 것 같은데 개수가 확 줄어든 건 같이 먹는 사람의 수가 많아서? 아니면 물가가 올라서?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언제나 내 기억 속 그때 그 모습을 간직해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한 때는 날 좋아해 주던 친구에게 언제까지나 내가 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남길 바랬고, 남편과 처음 데이트 한 식당이 망하지 않길 바랬고, 한참 공부할 때 나를 위로해주었던 아이돌 그룹이 언제나 풋풋하고 사랑스럽게 노래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내가 모으던 만화잡지는 폐간했고, 연애 초반에 즐겨 갔던 커다란 카페는 정육점이 되었고, 한 봉지 뜯으면 입천장이 다 까지도록 가득 들어있었던 과자는 어느새 홀쭉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추억과 기억을 담은 것들이 하나둘 사라진다는 것이 서글프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을 지키려면 그만큼 애정을 갖고 돌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20살 되어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과 노력의 부족으로 한계를 인정했고 내가 사랑하는 출판 만화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용돈을 모아서 만화책을 사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다. 또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계속 음반을 내고 음악활동을 하려면 나의 순수한 마음과 더불어 음반, 콘서트 티켓 등을 구매해서 현실적으로 응원해줘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꾸준히 시간과 돈을 들여 투자하고 가꾸고 키워야 했다. 마치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채 주길 바라는 철없는 생각처럼 나도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친구가 어색해지기 전에 종종 안부를 물어야 했고 식당이 문을 닫기 전에 자주 방문해야 했다. 좋아하는 가수에게 힘내라고 착한 댓글 한 줄이라도 달아주어야 했다.
가만히 있기만 한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일은 거의 없다. 운동을 안 하면 근육이 풀리고 살로 변하는 것이고 책을 읽지 않으면 내 머릿속은 정체를 넘어서 퇴보하는 것은 진리다.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부터 힘껏 아끼고 지키자.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의 시간과 열정을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