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이라는 허상
갑자기 어느 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 내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은 외모를 가꾸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몸집이 하루아침에 획기적으로 줄어들리는 없었고 메이크업을 안 하는 내가 갑자기 화장술의 도움을 얻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름의 순서를 생각해보았는데 일단 운동과 식습관의 작은 변화를 실천하기로 했다(결과적으로 가장 나중에 보여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화장법은 조금씩 동영상을 보며 배워가다가 조만간 백화점에 가서 직원과 만나 내게 어울리는 화장법 등 상담하고 꼭 필요한 것들을 구매를 할 생각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하기로 한 것이 ‘헤어’였다.
어렸을 때는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고 숱이 많아 감당이 안되어 숱이 적어지길 바랬는데 어느새 흰머리 한가닥도 아쉬워서 뽑지 못하고 자르는 나이가 되었다. ‘헤어’에서 가장 중요한 스타일링이 바로 ‘볼륨 살리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볼륨이라는 것이 원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라 눈속임하는 일이 마냥 쉽지가 않다.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머리카락 뿌리 방향과 반대로 헤어롤을 꽂아서 머리를 고정시키기도 해 보고 손가락으로 돌돌 말기도 해보고 다양하게 시도 중이다. 어제는 저녁 운동을 끝내고 샤워 후 열심히 노력해서 머리를 손질했는데 그동안 내가 만든 스타일 중 역대급으로 마음에 들었다. 밤새 헤어롤을 말고 잤고, 욕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볼 때마다 에센스로 부스스해진 잔머리들을 눌러주고 꼬불거리는 컬들도 풀어주듯 정리해주었더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정말이지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했다. 아침에도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 아름다운 볼륨은 금세 죽어버릴 텐데 운동을 과연 해야 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결국 운동이었고 그렇게 10시간 가까이 만들어 놓은 볼륨은 운동 20분 만에 사라져 버렸다.
예전부터 굳이 실제보다 더 몸집이 커 보이는 옷은 피하고 이왕이면 실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날씬해 보이도록 옷을 고르고 입으려고 했다. 간혹 그런 효과를 주는 옷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내 만족일 뿐이다. 거울을 통해 앞에서 봤을 때는 날씬해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가 생각지 못한 각도에서 볼 때는 전혀 날씬해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원래 존재하는 내 몸의 크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 배운 대로 모발 뿌리 부분을 아무리 띄워도 머리카락 사이사이 비어있는 공간까지 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뭔가 볼륨은 살았지만 휑한 나의 속은 다 들킨 기분이 들었다.
아침 운동 후에 다시 영광스러운 볼륨을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역대급은 언제나 찾아오지 않는 법. 미묘하게 실패해버렸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열처리 없이 물과 손, 시간만을 들여서 볼륨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어젯밤에 나를 도와줄 고데기가 도착하지 않았던가!! 실패와 좌절은 이제 벗어버리고 다시 한번 발전을 위해 부릉부릉 시동을 걸어야겠다. 비록 나의 머리숱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일은 없다고 하여도 허상뿐인 볼륨이라도 잘 살리는 기술을 얻어서 어느 정도 만족을 얻고 싶다. 내일부터 연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