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일 차

다이어트를 위해 커피를 끊어야 합니다

by 글쓰는 달

20년 전만 해도 우리 동네에서 카페(그땐 커피숍이라고 했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 집 근처에 온 지인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딱히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coffee라는 글자가 쓰여있는 간판만 보고 들어간 가게가 술집이었다는 건 한참 후에나 알 정도였으니.

에스프레소라는 말이 괜히 멋져 보여서 주문했다가 몰려온 당혹스러움이 요즘 세대에겐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피는 이제 우리 생활에 너무나도 친숙하고 깊숙이 자리 잡은 것 같다.

다양한 커피 추출 방법과 색다른 원두, 커피 용어의 대중화 등등 커피 지식과 취향도 깊어지고 세분화되는 이런 시점에 나는 용감한 고백을 해야겠다.


"내가 살이 빠지려면 커피를 끊어야 한다"라고.


커피 초보였을 시절에 내가 겨우 마실 수 있는 건 카페모카 정도였다. 이유는 그나마 덜 써서였다. 당연히 휘핑크림도 가득 얹어서 마셨다. 시럽 없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이유는 간혹 산미가 강한 커피를 마셨다가 신물이 올라오거나 배가 아팠던 경험을 몇 번 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당신은 커피를 좋아합니까?"라고 내게 묻고 싶어 질 수도 있다. 혹은 "당신에게 커피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 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용기 내서 대답할 것이다.


"커피 없이 살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제게 커피는 촉매 같은 역할이 더 큽니다."


아이를 낳고 나니 맨 정신으로 하루를 버티는 것이 어려워졌다. 체력과 시간이 부족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흔히 말하는 '카페인 수혈' 정도였다. 한 때 나는 '미취학 아동을 기르는 보호자에게 정부는 1일 1 믹스커피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부르짖었다. 그 정도로 달큰하고도 쓴 커피가 없이는 낮잠 없이 하루를 꼬박 나는 것이 어려웠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거나 어린이집에 가지 못할 정도로 아프면 소아과 진료받고 나오는 길에 바닐라 라떼와 떡볶이를 전투식량으로 사 올 정도로 달콤한 시럽이 든 커피는 내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커피의 색을 보고 향을 음미하고 세심하게 즐기시는 분들께서는 경악하시겠지만 내게 아메리카노는 음료 자체의 역할보다 '디저트를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촉매'로 자리 잡았다.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끈 전국 빵 투어. 그즈음 우리 가족 모두가 유명하다는 빵집은 웬만치 섭렵했을 만큼 빵사랑이 대단했다. 아이를 임신해서 멀리 여행을 갈 수 없는 나를 위해 부모님께서는 전국 각지의 맛난 빵들을 사다주시기 시작했고 우리는 여행을 가면 특색 있는 빵집을 꼭 방문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빵들은, 굳이 콕 집어 내가 고르는 빵들은 음료 없이 먹기가 어렵다. 너무 심심하거나 혹은 너무 달아서 음료수와 함께 먹어야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고 느끼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때 우유를 비롯하여 내게 최고의 친구는 아메리카노가 된 것이다. 그사이 카페가 굉장히 늘어나서 어딜 가나 구하기 쉽고 우유는 복부 팽만감이 컸는데 그보다 무겁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달짠의 조합처럼 달콤한 빵과 쓴 커피의 '달쓴조합'이 또 얼마나 환상적인지 모른다. 홍차와 함께 먹는 디저트도 일품이지만 아메리카노와 함께라면 평소보다 몇 배의 빵을 더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려면 가장 시급한 것이 빵과 디저트류 먹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런데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려면 카페인 섭취가 필요한데 칼로리와 콜레스테롤을 고민하면 믹스커피 대신 시럽 없는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한다. 하지만 내게 아메리카노는 미식가들이 시식 중간에 마시는 레몬 물 같은 존재라서 빵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까.

IMG_20201111_103444_961.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40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