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과 사이키 조명
처음 휴대전화를 샀던 때가 기억난다. 대학생 새내기가 된 기념으로 아버지가 사주셨는데 너무 신나는 마음에 어디에 가던 손에 꼭 쥐고 다니다가 학생 식당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덕분에 당시에는 아주 획기적인 기능이었던 듀얼 액정(휴대전화 커버에 액정이 있는 것)이 깨져버렸다. 아버지께 옴팡 혼나고 다시 고치긴 했지만 그때 처음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서 어떻게 서서히 고장 나는지 그 과정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미세한 금만 생겼다가 점점 그 틈 사이로 액체가 새어 나오며 화면의 색이 바뀌고 결국 마지막엔 화면 전체가 먹통이 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통신 기기를 오래 쓰다가 교체하는 편인데 늘 문제가 된 건 액정 파손 쪽이었다. 한 전화기는 액정을 교체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다시 서비스센터를 방문한 적도 있었다. 기사님이 수리 내역을 보고 안쓰럽게 생각해줬을 정도였다(수리비를 조금 덜 받으셨다고 했는데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다른 부품이 고장 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터치 방식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수행하는 스마트폰에게 액정 파손은 정말 치명적이다. 지금 쓰고 있는 전화기는 액정 모양이 나름 곡선형 모델이라고 수리비가 예전 모델에 비해 2~3배가량 비싸다고 한다. 하아.
지금 쓰고 있는 전화기는 산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 이미 액정 파손이 있었다. 그때도 23만 원가량 한다는 금액에 떨면서 교체하지 못하고 꼬박 3년을 더 썼다. 점점 충격을 받을수록 액정이 깨진 부분에 금이 가는 것을 지나 조각들이 떨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화면을 만질 때 그 조각들이 내 피부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도 났다. 처음에는 셀로판테이프를 붙여서 조각난 부분들을 고정시켰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보호 필름도 교체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떼는 순간 내 전화기의 표면은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해서 3년째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러던 중에 지난주 금요일 저녁, 아이들이 내 전화기로 학습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하여 가지고 가다 그만 벽돌 바닥에 전화기가 떨어졌다. 아이들은 미안해했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괜찮아, 엄마 꺼 이미 많이 상해서 티 안 나”라고 말하며 전화기를 뒤집었는데 이번에는 가로로 길게 마치 스타워즈의 광선검 같은 빛이 새어 나오는 줄무늬가 생겼다. 처음엔 그냥 화면에 가는 줄 하나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을 재생하는 순간 줄무늬 이하 부분 전체가 형광등 100개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듯 번쩍 거리기 시작했고 아예 어떤 내용인지 알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깜빡거렸다.
평소 같으면 그저 의연하게 넘길 문제였지만, 당장 다음 주에 있을 중요한 행사 예약 정보를 확인할 수 없게 되거나 혹은 행사 내용의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공포가 밀려왔다. 그리고 일부분에서만 문제가 있던 액정의 이상반응은 점차 전체 화면으로 퍼져갔다. 게다가 한 번 화면이 꺼지면 다시 켜기까지 전원 단추를 반복해서 눌러줘야 겨우 화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횟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가서 어느새 나는 휴대전화의 화면이 꺼지지 않도록 수시로 전화의 상태를 확인하고 꺼지지 않도록 괜히 화면 일부분을 터치하는 등 비효율적인 활동으로 에너지를 축내고 있었다.
전부터 미뤄왔던 액정 수리와 휴대전화 교체 중에 이리저리 고민하고 알아보다가 결국 나는 새 제품을 사기로 결정했다.
휴대전화는 더 이상 전화받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기에 미룰 수 없었다. 기대된다. 나의 새로운 세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