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차

보호자가 된다는 것

by 글쓰는 달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해지니 어김없이 알러지성 비염이 찾아왔다. 흐르는 콧물이 콧구멍에 가득 고여 숨쉬기가 힘들어 자다가 깨어 욕실로 가서 흥흥흥 세게 콧바람을 불어 뜨거운 콧물을 뽑아낸다. 콧물의 뿌리까지 싹 뽑히면 더 개운 할 텐데 아쉽게도 만만치는 않다. 입을 꼭 닫고 코로만 숨 쉴 수 있을 정도로 콧 속을 비우고 잠자리에 돌아왔다. 언제나 내 좌우를 지키는 금강역사 같은 아이 둘이 이불을 자기 몸에 돌돌 말고 자고 있다. 물론 함께 잠들었을 때와는 아주 다른 위치와 자세로. 이불을 꼭 덮어주면 어느새 또 걷어찰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다시 이불을 끌어다가 배와 발이 따뜻하도록 살포시 덮어본다.

결혼한 지 N 년을 채워간다. 돌아보니 까마득하지만 언제나처럼 시간은 나보다 성실하게 칼같이 흘러간다. 추석 연휴 마지막을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서 캠핑하듯 거실 취침으로 마무리하니 여러 생각에 잠이 잘 안 온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야무진 것과는 좀 거리가 멀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데 서툴고 즉흥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사실 결혼 전에는 혹은 신혼까지도 이런 내 특징이 일상을 사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결혼해서도 나는 부모님 아래에 살 때와 크게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가족관계 증명서에 남편의 배우자로 기재되어 있지만 나보다 나이도 많고 세대주인 그의 세대원이자 동등한 관계로 지냈기에 공동책임자 역할이나 동의자 역할 정도만 수행하면 되었다. 남편은 나보다 야무진 편이었고 사정상 따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그저 나 혼자 나 자신을 잘 끌고 가면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그들의 보호자가 되면서 내 부족한 점이 꽤 거슬리고 성가신 존재로 불쑥 튀어나왔다.

내게 귀한 생명이 찾아왔고 그때부터 나는 내 아이의 보호자가 되었다.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내 의지보다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공포영화나 매운 음식 등을 피하고 신체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게 활동해야만 했다.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나 기쁨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컸다. 내가 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갈 때도 집에 나뿐이었다. 시간은 저녁 7시쯤이라 한참 퇴근시간대였기에 또 고민이 시작됐다. ‘이 시간대에 택시를 타면 가격이 얼마나 나올까?’, ‘과연 배부른 나를 태워줄 택시 기사님이 있을까?’, ‘출산가방 들고 택시를 무사히 탈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 끝에 내 차를 직접 운전해서 병원에 가는 것을 선택했다. 군대 무용담처럼 이 일화도 두고두고 나의 레퍼토리가 되었지만 지금도 이때 나의 결정이 옳았는지는 반반이다. 출산하고 책에서 본 것처럼 완벽한 모유수유에 실패하여 다른 아이들보다 건강하지 못하게 키운 것 같아 미안했던 것부터 시작하여 너무 앙증맞은 아이의 손톱이 자꾸 자라 얼굴을 긁게 될 정도가 되었음에도 쉽게 자를 수가 없었다. 평소 주변에서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릴 정도로 물건을 망가뜨리게 하는 경향이 컸던 만큼 복사지보다도 얇은 아이의 손톱을 다듬다가 상처라도 만들까 봐 겁이 덜컥 났다. 아이가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를 펑펑 울린 일이 있었다. 아이가 코가 막혔는지 숨쉬기 어려워했다. 지금이야 능숙하게 본인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시원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신생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에는 아이와 나 둘 뿐. 이 어려움을 해결해야만 할 사람은 오로지 나 혼자였다. 하지만 신생아의 콧구멍은 정말이지 너무 작아서 집게나 면봉도 넣을 수 없는 크기였다.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나름 방법을 떠올려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결국 동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아이의 코딱지릍 빼러 방문하겠노라 예약을 했다. 날이 제법 추워서 차를 타고 가야 했고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다가 벨트가 제대로 맞지 않아 병원으로 출발하지 못하게 되자 나는 크게 당황했고 너무 미안해서 엉엉 울며 아이를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내가 잘못 조리한 이유식을 먹고 아이가 체하면 어쩌나, 내 실수로 어린이집 준비물을 가방에 넣지 못해서 아이가 당황하면 어쩌나, 내가 게을러서 아이 등원 버스를 못 태우면 어쩌나, 잠깐 졸다가 내가 버스 하차 시간을 놓쳐서 아이가 혼자 엄마를 기다리다가 혼자 버스에 남은 채로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그리고 또, 또. 남편의 직장문제로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사는 동안 하루 걸러 지속적으로 악몽을 꾸었다. 주제는 갑자기 전쟁이 나서 나 혼자 어린 이 녀석들을 데리고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나 함께 외출했다가 아이를 잃어버려서 여기저기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결혼 전에는 밤새 천둥번개가 쳐도 한 번 일어나본 적이 없던 나였지만, 내가 지켜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옆집에서 나는 발소리나 전자음이 들리면 더 잠귀가 밝아지고 깊은 잠을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밤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고 해도 이제 나 대신 창문을 닫아줄 내 부모님이 같이 살지 않으시고 결국 그 창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보호자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해야 했고 그것에 대한 책임도 외롭게 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왜 부모가 되면 전보다 어른이 된다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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