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차

존중받고 있다는 것

by 글쓰는 달

#1

지인 한 명이 회사에서 짜증 나는 일이 있었다며 씩씩거리며 내게 왔다. 평소 감정 표현이 크지 않은 사람이기에 걱정이 되어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평소 자신의 회사 조직과 업무에 대해 내게 설명한 적이 거의 없는 그 사람은 뭔가 장황하게 배경지식부터 몇 마디 말하려다가 대뜸 “아, 내가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해? 그리고 내가 말하면 알아?”라며 자신은 내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건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난다며 대화를 닫아버렸다.


#2

코로나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있었다. 의학 관련 업무에 종사하기 때문에 이 상황에 회사의 운명이 더 민감하게 왔다 갔다 해서 자신의 업무에 더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역시 그에게 어떤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지인은 이과적 소양이 부족한 나를 위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고르고 쉬운 비유를 들어 대강의 설명을 해주었다. 정확하게 그 용어들을 내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략 어떤 이유로 그가 힘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


#3

영어 회화 수업을 들을 때면 나는 한국인 선생님보다 원어민 선생님의 강의를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절대로 내가 영어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반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이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학생 대부분이 선생님의 말을 완벽하게 다 알아듣지 못해도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호기로운 마음으로 학내 언어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회화수업을 수강했는데 역시나 나의 이론은 틀림이 없었다. 한국어가 자유롭게 가능한 선생님보다 원어민 선생님 수업이 더 편하고 즐거웠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원어민 선생님은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든 이해시키려고 더 노력해주었다. 그 상황에 딱 떨어지는 단어는 아니더라도 비슷하면서도 더 쉬운 단어나 표현을 내게 제시했고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면 고심하며 아까보다 더 쉬울 법한 표현으로 동작과 그림을 섞어가며 설명해주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2번의 상황을 겪으며 나는 깨달았다. 1번의 상황 속 지인은 나를 전혀 존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사실 내가 두 사람의 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1번보다 2번의 업무가 일반인이 접근하기 더 어려운 분야였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나를 존중하고 아끼는 지인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거나 잘 모르겠으니 더 쉽게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요청에 친절하게 다시 설명해주고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이 과정은 사실 귀찮고 재미없다. 그러니 상사 욕이라도 하면서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려면 친구보다 직장 동료와 한 잔 걸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자존감이 높지 않은 편이고 첫 번째 지인을 많이 좋아하기에 웬만하면 그가 원하는 상황에 나를 맞추려고 애써왔다. 간섭을 싫어한다고 해서 내 성격과 맞지 않지만 쿨한 척하다가 혼자 속이 썩어 문드러지면서도 티를 낼 수 없었다. 혹여나 나를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할까 봐서. 근데 정말 가만가만 있으니 나를 가마니로 알고 대하는 그의 태도를 점점 참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어째서 용기를 내서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니 가르쳐달라는 사람을 그렇게 면박을 주며 무시하는 걸까? 어쩌다 자신이 더 우월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며 ‘니가 뭘 아냐’는 방식의 대화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는 내 앞이 아닌 다른 자리에 가서 유머러스한 척, 스마트한 척 잔뜩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내게 그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왜? 그는 나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약속을 조율해야 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통보를 하고,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에서 늘 한 발 빠져있으면서 무임승차를 한다. 그러면서도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자신의 용무가 있지 않으면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고, 냉정하다. 왜? 나는 그의 호구이기 때문이다.

한 번 접힌 내 마음은 아무리 다시 펴봐도 주름이 남아 아무리 당겨보고 눌러보아도 이전과 같지 않다. 그 후로도 세로로 접히고 대각선으로 접히고 접힌 상태에서 또 접힌 색종이 같이 내 마음은 너덜너덜 해지고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나를 존중해주길 기대한다는 것이 참 슬프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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