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혁명 이후로 기계와 사람의 가장 다른 점을 말하자면 실수 없이 똑같은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반전 없이 무미건조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쟤는 인간미가 없어. 기계 같지 않아?'라고 말하곤 하지 싶다.
그런데 가끔은 기계가 기계 같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기계도 사람 탄다'는 말해본 적 없는가.
나는 요즘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을 켜는 일이 거의 없다. 일단 데스크탑이 우리 집에 없기도 하고 노트북 나이가 거의 15살에 육박하기 때문에 인증서 등등 꼭 필요한 기능을 요하는 작업 외에는 잘 켜지 않는다. 대신 태블릿이나 휴대전화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 편이라 블루투스 키보드가 참 소중하고 고맙다(키보드에 비해 마우스를 쓸 일은 거의 없다). 요즘 도전하고 있는 100일 프로젝트도 이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고 있다.
그런데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나서 키보드를 연결하려고 여러 번 며칠간 시도를 해봤는데 잘 되지 않았다. 손으로 휴대전화의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쏟아지는 나의 생각을 옮기는 데에는 속도 차이가 커져서 답답한 마음이 커지기 때문에 글을 쓸 때는 키보드가 정말 정말 필요해졌다. 오늘은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보기도 하고 키보드 전원도 다시 껐다켜보았지만 딱히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친한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메신저 방에 이러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몇 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가 키보드 신호를 잡았고 기기 등록을 마치고 이렇게 신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런 일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 같다, 가전제품이 잘 작동하지 않아서 수리기사님을 부르면 갑자기 기계 오작동이 사라지고 정상적으로 움직여서 곤란한 적이 있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해도 안되던 작업이 아빠나 남편을 부르면 갑자기 술술 잘 해결돼서 민망했던 순간. 직장 컴퓨터나 프린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쩔쩔매다가 고민 끝에 정보과에 연락드려서 직접 오시자마자 컴퓨터가 마치 무림고수 앞에 납작 엎드린 하수처럼 오작동이 저절로 치유되는 일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없는 사람이 되는 이런 장면들. 정말 익숙해서 짜증이 난다. 하하하하.
나름 수행하는 경로도 차근차근 따라 하고 유튜브로 공부해도 내가 혼자 하려고 하면 왜 잘 안 되는 걸까? 마치 수학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문제풀이를 다 보고 나서 스스로 문제를 풀려고 하니 아무것도 생각 안나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쯤 나도 내 기계를 장악하는 고수의 냄새가 날 것인가. 하하하.
기계에겐 생각과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가끔은 이것들이 나를 골탕 먹이는데 고수가 아닌가 싶다.
나만의 경험은 아니라고 제발 편 들어주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