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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달 Dec 21. 2020

80일 차

인형의 표정

 우리 집에 있는 대부분의 인형은 공장에서 한 가지 디자인을 적용하여 대량으로 만들어진 공산품이다. 제작자의 원래 의도대로라면 어느 곳에 있는 제품이든 간에 우리 집에 있는 제품과 똑같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계에도 분명 오차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결혼 준비하면서 이불 구경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수많은 이불들 사이에 애벌레 모양을 한 베개 겸 인형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애벌레가 귀엽게 웃고 있는 얼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인형을 본 나의 동생이 굉장히 관심을 보이고 급기야 인형을 갖고 싶어 했다. 동생 말에 의하면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인형이라고 했다. 평소 답지 않게 인형에 큰 흥미를 보이는 동생의 모습이 귀여워서 이후에 이불 가게에 갈 때마다 애벌레 인형을 쳐다보곤 했는데 그때 알게 되었다. 인형에게도 미묘한 표정의 차이가 있음을. 나중에 동생과 애벌레 인형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본인도 비슷한 느낌의 인형을 찾으려고 기회 날 때마다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인형에서 느꼈던 좋은 기분을 주는 얼굴을 찾지 못해서 사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동생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애벌레 인형을 하도 만지고 베고 눕곤 해서 동글동글 했던 인형의 숨을 확실히 죽여주며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 아이들도 인형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가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단순히 내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친숙하고 유명한 캐릭터의 모양으로 만든 인형을 더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재 만 2년째 우리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형은 의외로 이름조차 모르는 토끼 인형이다. 작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생일선물로 받아 온 인형인데 큰 아이도 그 인형을 보자마자 정말 사랑에 빠져버렸다. 둘은 서로 그 인형을 차지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날이 많았고 잡아당기다가 양 팔이 떨어진 적도 있다. 서너 번의 수술 끝에 결국 한쪽 팔은 찾지 못하고 나머지 한쪽 팔만 달려있는 상태다. 징그럽게 생각하기는커녕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형이다. 처음에는 똑같은 모양의 인형을 사야 하나 생각했는데 내 동생의 일화를 생각하며 그 마음은 좀 접었다. 그땐 그래도 아이들이 금세 다른 인형에 더 마음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는데 여전히 그 인형이 가장 사랑받는 것을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인형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은근한 미소가 사랑스러운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냉정한 얼굴의 인형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우스꽝스럽게 활짝 웃지도 않는 적당하고 온화한 얼굴.


 아이들에게도 인형의 미묘한 표정이 느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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