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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an 12. 2016

거절을 쌓아 만드는 기회

#12. 문간에 머리 들여놓기


“인지부조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마감 청소를 하며 날아온 봉순의 일침.

봉순이네 다락방, 그 위대한 여정의 서막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매상은 없었다. 당연히 손님도 없었다. 술은 안 파나 본데? 술 오른 장정 몇이 들어와서 기웃거리다가 사라진 것이 전부다. 아침부터 정렬해 놓은 커피 잔들은 그 어떤 출격 신호를 기다리는 듯 숨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출격은 없었다.


수다로 가득 메워졌던 지난 시간과 달리, 오늘 봉순과 나는 침묵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이따금 무미건조한 농담을 던지며 헛웃음을 지었지만, 침묵의 농도가 너무 짙어질까 서둘러 깨뜨리는 정도였다. 웃음 뒤엔 더 짙은 침묵과 어색함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묵직한 공기 속에서 마감 정리를 하고 있다.


“인지부조화는 여러 전략 중 하나였을 뿐이야.”


그녀가 ‘으이그’하며 웃는 표정을 만들어보지만 해밝지 않다. 겹겹이 쌓여 봉순을 지켜보던 커피 잔들도 그 표정에 시무룩해지는 것 같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녀의 도전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이해한다.


올인.

깔끔한 가르마의 도박사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대사. 그녀는 다락방에 그 최고의 대사를 뱉었다. 지난 수년간의 세월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것, 수많은 실패에 관대할 수 있었던 것, 실패를 쌓아 올려 성공에 도달하였을 때 침착할 수 있었던 것은, ‘단출한 다방’이라는 목표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결국 목표점에 도달했다.


지금 봉순은 처음으로 초조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살아 움직이며 심장을 뛰게 했던 미래가, 그 깊은 곳에서 자신을 지탱해준 청사진이 기대에 어긋날까 봐,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봐 겁이 날 수도 있다. 어쩌면 더는, 자신의 실패에 관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약간의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손님은 금방 생길 거야. 일단 하루 종일 다락방을 가리는 트럭부터 처리하자.”


봉귀쫑. 봉순의 귀가 쫑긋.


“어떻게?”

“주차 금지 간판을 세워야겠어.”


봉고뚱. 봉순의 고개가 갸우뚱.


“거기는 분식집 앞인데?”

“문간에 머리 들여놓기 효과... 기억해?”


봉봉바. 봉순이 봉팔을 바라봄.


"응? 문간에 뭐?"


봉봉바. 봉팔이 봉순을 바라봄.


문간에 머리 들여놓기 효과(Face in the door Effect).

이름부터 요란한 이 효과는 성공률 꽤나 높은 심리 효과 중의 하나이다. 회사에서도 마케팅 전략으로도 자주 써먹곤 하였는데, 가격을 흥정할 때 높은 가격부터 깎아 내려가는 것이 이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 하지만 그 내면에는 매우 간단한 원리가 숨어있다.


보통, 사람은 거절을 하면 무의식적으로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생겨난다고 한다. 때문에 목표한 것보다 더 큰 부탁을 하고, 거절할 경우 본래 목표한 부탁을 하면 그 성공률이 훨씬 높아진다. 심플하면서도  유용할뿐더러, 그야말로 일격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골목을 가리는 트럭은 봉다방이 있는 건물 앞에 세워져 있지만, 정확히는 건물 1층 분식집의 앞에 세워져 있다. 골목골목 서로 오래 알고 지내다 보니, 트럭의 주차도 쭉 그래 왔던 것처럼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것 같다. 분식집 사장님과의 타협이 필요하다.


 “가끔 이론을 실제로 활용하는 너를 보면 신기해.”


칭찬 비스름한 것을 듣자 없던 사명감이 끓어오른다. 봉순아 나만 믿어. (남자는 다루기 정말 쉽다.) 비장하게 계단을 오른다. 분식집 문을 활짝.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작전을 펼친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이 앞에 야외 테이블을 몇 개 놓았으면 하는데요.”


부탁.


“에이~ 거기다 그렇게 공간 차지하고 놓으면 또 우리 가게도 가리고 애매해지는디~ 안돼요.”   


거절.


사장님은 부지런하고 정직하신 분이지만 봉다방의 부당이득을 눈감아주실 정도로 유연한 분은 아닌 듯 보인다.


“사장님~ 그러지 마시고. 저희가 커피 팍팍 쏘겠습니다. 아 그리고 사모님, 김밥 세 줄만 싸 주세요.”  


좀 더 간곡한 부탁과 로비.


“하이구~ 뭐 감사한데요. 테이블 놓고 뭐 그러는 거는 죄송하지만 안돼요~”


역시 거절.


“사장님, 아시겠지만 제가 이걸 성사 못 시키면... 그... 저기 지하 동굴에 요괴가 하나 있는데... 사람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시고...”


목숨 구걸.


“에유~ 그래도 될 게 따로 있죠. 죄송해요.”


다시 거절.


그리고 회심의 일격.


“저기 사장님. 그러면 테이블 대신에...”


다음날부터 그곳에는 자그마한 주차금지 간판이 세워졌다.

커다란 간판 밑에는 오밀조밀 봉순의 필체가 묻어있다.


 <봉순이  먹고살아야 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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