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Jan 12. 2016

처음, 그 두 번째를 위함

#13. 사이코 드라마



반갑습니다. 봉다방입니다!!!


“이,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 그쪽이요? 네! 그쪽으로 앉으세요!”

“뭘 드시겠... 아! 메뉴는 뭘로...  아... 아아! 메뉴판을 안 드렸구나!? 여기요.”

“아. 카페라떼요? 예예 맛있습니다 카페라떼~ 예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달그락달그락. 달달.  덜컹덜컹. 덜덜.  허우적허우적. 난리부르스.

봉순과 나는, 둘이 합쳐 여덟 개나 되는 팔다리를 어떻게 쓸지 몰라 부딪치고 망설이고 멈칫하고 서두르길 반복했다.


"여기 커피 마실 수 있죠."


대망의 첫 손님은 봉다방의 오픈 3일째인 ―어느 가랑비 내리는 정오에  불현듯 습격하였다. 그 날 역시 지나온 ‘어제와 그제’처럼 가벼운 농담과 불만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들렸다. 사박사박, 여성의 인기척이었다. 머리를 질끈 묶은 그녀는 편한 복장이었지만 도시적인 인상이 강한 여성이었다. 고객에게 재화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에 고객이 오는 것은 당연지사. 그 당연한 존재에게 비친 우리의 첫 모습은 ‘꼼짝 마’였다. 금지된 구역에 들어온 누군가를 보는 듯한 토끼 눈, 3초간의 공백, 그리고 대혼돈. 봉다방과 고객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유였나. 밀크였나. 아, 우유가 밀크지.  우왕좌왕하는 틈에  주문받은 커피가 완성된다.  그 카페라테는, 정말이지 그 녀석은, 봉순과 봉팔에 의해 제조되었기보다는 그냥 자기 스스로 탄생하였다.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다. 우리의 정신은 잠시 부재중이었으니까.


그녀는 시간이 없는 듯 재차 시계를 보며 커피를 흡수하였다. 간간이 봉다방의 이곳저곳을 흘기며 눈에 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10분 만에 다락방을 떠나갔다.


“아. 그래요? 맘에 드네요. 많이 파세요.”   


자신이 첫 손님이라는 말에 대한 대답. 광채로 가득한 봉순의 눈이 나를 향한다. 해벌쭉. 나도 해벌쭉.




한 차례 폭풍을 맞이한 뒤 우리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눈치챘다. 미래에 대한 멋진 광경에만 시시덕 거릴 뿐, 정작 코앞의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손님이 왜 안 오지’라던 이틀간의 고민은, 사실 ‘막상 손님이 오면 어쩌나’였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실제 손님이 나타나자 오랜 기간 커피를  갈고닦았던 봉순의 두 손마저 묶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손님의 출몰에 대비한 새로운 전략을 세운다.


“역할 놀이?”


역할 놀이. 사이코 드라마라고도 하며, 보통은 가족 간의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활용되는 치료법 중 하나이다.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상대방의 입장을 체험함으로써 전에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이 치료는 아니지만(아니,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이 ‘역할 놀이’를 활용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손님이 된다. 누군가는 봉다방 식구가 된다. 빈 테이블에 손님이 있는 것처럼 상황극을 하기도 한다. 손님맞이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 첫 번째 목표, 손님의 입장이 되어 우리의 문제점을 꼬집어보는 것이 두 번째 목표였다.  


봉순의 차례.


나는 손님이 된다. 문을 열기 전, 다락방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최대한 버린다. 주문을 건다. 나는 손님이다. 나는 손님이다. 나는 커피가 좋다.  


"어라?"


봉순이네 다락방? 새로 생긴 카페인가. 이런 시장 골목에 카페라니. 들어가 볼까. 노란색 테두리의 유리문. 열어보자. 지하에 있군. 나무 계단.  삐걱삐걱. 나무 탁자. 또 나무나무 선반들. 온통 나무로군. 정겨운데? 아직 나무 냄새가 배어 있어. 머리가 좀 아픈 것 같기도 해. 아기자기한 내부. 생각보다 밝아서 좋군. 외부와는 전혀 다른 세상 같아. 청결도는? 음.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깨끗하군. 잠깐. 나 너무 까다로운가. 나쁠 건 없지. 일하는 사람이 여자군. 알바생인가. 아! 이런, 사장이군. 알바생의 얼굴이 아니야!


“어서 오세요.”


“여기 새로 생겼어요?”

“네.”


“사장... 님 이신가?”

“네.”


“혹시... 성함이 봉순?”

“네.”


차가운 여자군. 내가 잘생겨서 좀 불편한가. 어쨌든 좀 더 상냥하면 좋을 것 같아. 서비스 정신이 없어! 실력 좀 볼까. 카페 모카를 시켜보자. 생각보다 가격이 싸네. 손놀림. 그리 능숙하지는 않군. 능숙한 건가. 모르겠다. 커피 맛은? 내가 자주 먹던 ‘덤 앤 더머 도넛’과 비교해보자. 일단 맛은 더 깊군. 맘에 들어. 쿠키 같은 것을 같이 주면 더 좋겠는데? 그런데 봉순이는, 아니 저 여자는 뭘 저렇게 보지? 책? 만화책... 음. 말이나 붙여 보자.


“저기요. 손님에게 너무  무관심하신 것 같아요.”

“어떤 관심을 원하시나요.”


이 여자 분명 솔로일 거야.


“남자 친구 없으시죠?”

“손님. 아무래도 역할에 너무 열중하시는 것 같은데요. 목숨까지 거는 걸 보면.”


“아, 네... 실례했습니다.”


손님 점수 100점. 직원 점수 0점. 냉철한 채점은 ―언제나 그랬듯― 마음속으로만 해본다.


나의 차례. 이번엔 그녀가 손님이 된다.


다시 한번 주문을 건다. 나는 봉팔이. 나는 봉팔이. 어제 봉팔이였으니, 오늘도 봉팔이. 여기는 봉다방. 나는 봉다방에서 일하는 봉팔이. 오늘은 봉순이가 아파서 나 혼자다. 홀로 손님 맞을 생각을 하니 불안하다. 아냐 잘할 수 있어! 외부의 바람이 스며드는 소리. 그리고 삐걱삐걱. 손님이다! 자, 쉼 호흡. 인사는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반갑습니다. 봉다방입니다~!!”

“...”  


“어, 음... 뭐 드릴까요?”

“아메리카노 주세요.”  


차가운 여자군. 내가 잘생겨서 좀 불편한가. 아메리카노. 그리 어려운 메뉴는 아니다. 침착하고 천천히 만들면 돼. 컵을 덥히고, 커피를 내리고... 뭐, 뭐야. 뚫어져라 보고 있잖아! 날 시험이라도 하려는 건가. 침착하자. 평소처럼 하면 돼. 봉순 없이도 잘할 수 있어. 떨리는 손은 어쩌지. 기지를 발휘해 보자.


“테이블에 앉아 계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손님~”

“그러죠.”


한 시름 돌렸군. 쿠키 서비스를 시험해 보자. 부드러운 쿠키와 아메리카노. 좋잖아? 그냥 주기엔 좀 민망한데? 생색 좀 내볼까.


“쿠키는 서비스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네.”


“처음 오셨죠. 초면인 거 같은데.”

“네.”


“남자 친구 없으시죠?”

“갓 만든 아메리카노로 세수해 본 적 없으시죠.”


우리의 첫 역할 놀이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봉순아. 우리 역할을 바꿔도 캐릭터는 그대로인 거 같지 않아?”


그 이후로도, 봉순과 나는 손님이 없는 시간을 틈타 (사실상 거의 하루 종일) 역할 놀이를 하였다. 처음엔 너무 강했던 서로의 캐릭터도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다양한 성향의 손님으로 나뉘었다. 까다로운 손님, 부끄러운 손님, 기분 좋은 손님, 기분이 나쁜 손님, 실연당한 손님, 바쁜 손님, 단골손님. 1인 2역, 1인 3역 등. 연기 경력(?)이 있어서인지 그리 어렵지 않게 여러 분야의 손님을 ―봉순을 또는 봉팔을― 맞이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예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 놀이의 시간은 점차 줄어갔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손님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 12화 거절을 쌓아 만드는 기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