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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Feb 15. 2021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웃는 얼굴에 걱정 뱉기


알람도 울리기 전에 눈이 뜨인 날이었다. 늘상 눈가에 머물던 시큼거림도 없고, 세수를 하자 그 개운함이 배가 된다. 거울 속엔 어쩐 일인지 이목구비가 분명한 게 사람다운 얼굴이 있다. 보고 맡고 맛보는 기능 외에 그 어떤 미적 요소도 없던 덩어리였는데, 내 것이 맞나 싶다. 평소보다 시간도 넉넉해서 옷 선택에 공을 들여본다. 사람들이 저녁 약속 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생기지도 않을 일에 고민을 더하며 출근!


까닭 모를 설렘은 회사까지 이어졌다. 넘치는 의욕에 책상을 정리하고 키보드도 닦으며 개운한 기분을 유지한다. 마침 옆 자리 동료가 출근 중이다. 인사 비슷한 몇 마디가 오갔고, 대화의 공백이 생기자 그가 걱정스러운 낯빛을 띄우며 묻는다.


“그런데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컨디션 최고다. 하지만 질문에 맞는 답은 아닌 것 같아 없던 고민이라도 만들어볼까 작은 뇌를 굴리다가 대답한다.


“오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좀 피곤한가 봐요.”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1. 네 얼굴 말이야. 오늘따라 보기 불편한데?


상대의 안색이나 외모를 마치 안부 인사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말 그대로 인사 또는 걱정으로 전달이 되면 좋으련만, 다른 의미를 담을 때가 더 많다.


혹여 비범한 영안(靈眼)이 있어 누군가의 웃는 얼굴에서 심연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그 말을 듣는 상대에겐 ‘보기에 안 좋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대는 오히려 그때부터 거울을 자주 들여다볼지도 모른다. 왜 굳이 신경 쓰이게 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고민이 있었다고 한들 누군가의 이런 말 한마디로 잊게 될지 모른다. 잠시라도 고민을 없애주니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겨드랑이를 꼬집어 두통을 잊게 하는 효과와 같다.


아~ 오늘 기분이 아주 상쾌하네


예문

고민을 다루기 생뚱맞은 상황에 꺼낼수록 듣는 이의 당혹감은 더 커진다. 걱정스런 표정까지 더하면, 상대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만 끔뻑거리다가 ‘왜? 오늘 왜? 어떤데?’라는 식으로 되묻거나 궁금하지도 않은 이유를 대기 시작할 것이다. 이따금 미팅을 갖던 거래처 직원은 나를 만날 때마다 비슷한 타이밍에 이 말을 꺼냈다.    


“어머~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그럼요~ 그런데 잘 못 지내신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네? 아 네, 좀 바쁜 것 빼고는….”


한 달에 한 시간 내외, 업무차 만나는 게 전부인데 그 사람이 내 안위를 깊이 걱정하거나 궁금해할 이유는 없다. 그저 자신의 눈으로 본 누군가의 외모에 대해 딱히 뇌를 거치지 않고 인사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다. 내가 활짝 웃고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 표현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심화과정

“네? 아 네, 좀 바쁜 것 빼고는….”

“아닌데~ 얼굴이 너무 안 좋아요. 괜찮은 거 맞아요?”

“어…음, 진짜 괜찮은데….”

“아냐, 아냐. 이건 무슨 일이 있는 얼굴이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어! 무슨 일 있죠.?”

“….”    


상대의 외모에 대해 직접적으로 표현할수록 그 수위는 높아진다.     



컨디션 최상이라구...!



주의사항

이 표현은 한번 맛을 들이면 끊기 어렵다. 대화의 공백을 꽤 효과적으로 메우기 때문이다. 중독된 후에는 마치 민망할 때 찾아오는 가려움증이나 하품처럼, 큰 의미 없이 반사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상대는 얼굴이 그 모양인 이유를 얘기할 거고, 나는 그걸 다시 까먹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그렇게 주변은 특별한 목적 없이는 당신과 대화하는 것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참고 I

만약 상대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면 ‘보기에 안 좋다’는 의미를 거두고 물어보는 게 안전하다.    


“요즘 좀 어때? 별일 없고?”    


‘요즘, 최근’ 등의 활용하여 시점을 넓히면 당장 지금의 상태만을 평가하는 뉘앙스가 희석되어 듣는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한결 수월해진다.


아무리 봐도 상대의 표정이나 상태가 안 좋고 고민을 꼭 들어야겠다면, 그 자체가 목적인 자리를 따로 만들자. 평소와 달리 진솔한 맥락이니 의미가 곡해되지 않는다. 내 고민을 먼저 털어놓는 것도 자연스러운 방법. 넌 어때? 고민 있어?    



참고 II

굳이 상대의 안색을 대화 초반의 장치로 활용하려거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좋아 보이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

파괴력: ★☆☆☆☆
지속성: ★☆☆☆☆
중독성: ★★★☆☆

유의어: #안색이왜그래 #무슨일있지 #아냐무슨일있어야돼
대체어: #요즘좀어때 #좋아보이네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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