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의 옷차림에 대한 남자들의 대화 엿보기
호남: 호랑말코 남성
불녀: 팔불출 미녀
영제: 영원한 제삼자
무일: 무대포 일차원
호남: 겨울이 가네.
영제: 갔지.
무일: 갔다.
호남: 여름이 오겠지?
영제: 온다.
무일: 드디어! 썸머!
호남: 휴, 오는구나.
영제: 별로 안 반가운 눈치네.
호남: 반가울 수가 없다.
무일: 안 반갑다고? 여자들의 옷 가죽이 살가죽이 되는 계절이?
호남: 싫다. 지긋지긋 해.
무일: 눈알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호남: 눈알은 정상이야. 여친 때문에 그렇지 뭐.
무일: 아... 불녀씨?
영제: 불녀가 노출의 미학을 즐기는 편이던가?
호남: 즐기는 정도가 아니야. 그냥 벗은 거나 다름없는 옷을 입을 때도 있어.
영제: 그런 옷이 있나.
호남: 그런 옷이 있더라... 심지어 아주 많아.
무일: 야야, 거 좀 입으면 어떠냐. 예쁘면 되지! 내 여자 이쁘면 나도 좋은 거 아닌가?
호남: 넌 연애를 해보고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어. 여름은 노출과의 전쟁이야.
영제: 노출과의 전쟁? 그래서 다른 여자들 노출도 반대야?
호남: 아니, 그건 천국이지.
영제: 헐.
무일: 똥 찌꺼기 같은 놈! 니 눈은 즐길 준비가 끝난 것 같은데?
호남: 그게 싫어. 나 같은 누군가가 불녀를 본 순간 시선이 한번 더 머물고, 그 끈적한 동공의 연장선이 몸을 따라 내려가잖아. 내 여자가 시각적 해소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단 말이지.
영제: 뭘 또 그렇게까지 생각을...
무일: 동공의 연장, 뭐?
호남: 그 뿐이 아냐. 불녀는 선머슴 같이 행동할 때가 많거든. 야한 옷을 입은 날은 속이라도 보일까 조마조마하다니까. 신경 쓰여서 제대로 놀지도 못해. 내가 보수적인 건가?
영제: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뭐. 신경 안 쓰이는 것도 이상하니까.
무일: 근데 그런 옷이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잖아.
호남: 한다 해. 매년 여름마다 시끌시끌하다. 이건 뭐 노사협정도 아니고. 그 옷은 안돼, 그 옷은 안에 꼭 다른 옷을 같이 입어, 그 치마는 버려, 그건 바지야 스타킹이야. 자꾸 싸우다 보면 나만 시대에 뒤 떨어지는 놈 같고... 막상 눈 딱 감고 이해해보려 하면 동공의 연장선들이 괴롭히고!
무일: 원래 연애라는 게 저렇게 복잡한 거야? 벌써 피곤하네.
영제: 걱정 마. 저 정도는 아냐.
호남: 영제 넌 어때? 여친이랑.
영제: 흠, 걔는 일단 노출을 즐기는 편이 아니야. 가끔 과감하게 입을 때는 있지만, 아직 그런 걸로 다툰 적은 없어.
호남: 대단하다. 넌 아무렇지도 않아?
영제: 난 참을만하더라고. 그래도 만약 얘기할 일이 생긴다면... 입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노출의 양면성을 알려줄 것 같은데.
무일: 또, 또, 어려운 얘기들 한다.
호남: 양면성? 어떤?
영제: 패션이나 표현은 인정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널 쉽고 가벼운 여자로 볼 수도 있다. 결국 남자들은 그렇다, 라던가.
호남: 야야. 단어 잘 골라라. 싸움으로 번지기 딱이야.
영제: 아, 그런가.
무일: 그런데 여자들도 남자들의 그런 시선을 알고 입는 거 아니야?
호남: 불녀 말로는 왜 자기가 다른 남자 시선까지 신경 써야 하냐고 했어. 그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입은 것도 아닌데.
무일: 그게 그거 아닌가? 어쨌든 남자들의 시선을 알고 있다는 거잖아.
호남: 아닐 걸? 맞나? 맞는 거 같아! 아오 내가 이걸 확!
영제: 진정해. 내가 어디서 봤는데 여자는 오히려 다른 여자의 시선을 즐긴다더라고.
호남: 그래? 왜?
무일: 진짜 왜?
영제: 몰라. 그렇다던데.
무일: 뭐, 그렇다면 다행이긴 하네.
호남: 아니지! 문제는 그녀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동공의 연장선이라고!
영제: 휴, 호남아. 진정하고 들어봐.
호남: 뭔데!
영제: 넌 확실히 보수적이야.
호남: 그건 인정.
영제: 불녀는 좀 개방적이고.
호남: 그렇지. 너무 심해!
영제: 그런데 불녀는 네 소유물이 아니잖아?
호남: 아니 뭐,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
영제: 생각해 봐. 그녀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존재야. 옷을 하나 고르는 것도 그렇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입을 권리가 있지.
호남: 물론 그렇지만. 관계라는 게 하고 싶은 데로만 해선 안되잖아.
영제: 맞아. 불녀는 널 만나고 있고 널 지독히 좋아하니까, 이미 어느 정도는 신경 써서 입는 걸 거야. 심지어 네가 정 싫어한다면 그런 옷을 아예 안 입을 수도 있겠지.
호남: 바라는 바다!
영제: 그런데 사람이라면 억눌린 욕구는 쌓이기 마련이잖아. 불녀의 억눌린 것들이 네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 그건 원치 않지?
호남: 당연하지.
영제: 또 한 가지. 여친에 대한 관심과 결속도 중요한데, 네 얘기에선 왠지 믿음이 결여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좀 믿어 봐. 행동을 선머슴처럼 하던 어떻던 어느 여자가 자기 속을 보여주고 싶겠냐. 불녀도 그런 와중에 신경을 쓰고 있을 거야.
호남: 후, 정말 그럴까...
무일: 그래 인마! 어깨에 힘 좀 빼고! 지가 무슨 패션쇼 심사위원인 줄 알아.
영제: 그리고 사람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녀를 주의 깊게 보진 않을 거야. 불녀의 매력을 가장 잘 알고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너잖아. 다른 사람에게는 네 눈 속의 불녀가 훨씬 평범하게 보인다는 의미지.
호남: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무일: 그래, 인마! 불녀 못생겼어! 몸매도 별로야! 눈 안가 인마!
호남: 무일아.
무일: 응? 왜?
호남: 아니야... 어쨌든 기분은 훨씬 나아졌다! 이해도 좀 되는 것 같고.
영제: 다행이네. 이제 그 동공의 연장선인지 연장전인지는 잊자.
무일: 오! 그럼 우리 오늘부터 쿨가이가 되는 건가? 하핫!
불녀: 내일 덥다던데! 나시 입어야겠당~
호남: 아~ 그 벗은 거나 다름없는 천 쪼가리 말이지?
불녀: 뭘 벗어 벗기는 또!
호남: 농~담이야. 농담! ㅎ 입고 싶으면 입어.
불녀: 진짜? 웬일이래~
호남: 응. 입어 입어. 아니, 입어. 아니, 안돼.
불녀: 응?
호남: 안돼! 안 되겠어! 안 된다고!!
영제의 여인(이하 제인): 아 정말?
영제: 어. ㅎㅎ 사람이 쉽게 변하나. 그래서 결국 다시 안된다고 하고 엄청 싸웠대.
제인: 재밌는 커플이야.
영제: 그러게 말이야. 내일 초등학교 동창회 간다고?
제인: 응. 저번에 오빠가 사준 치마 입고 가려고.
영제: 아~ 그 치마?
제인: 응. 역시 오빠의 안목이란! 다리가 어찌나 길어 보이는지.
영제: 버려.
제인: 응? 뭐야 갑자기.
영제: 넌 동공의 연장선을 몰라. 버려.
제인: 뭐라는 거야. 푼수같이.
영제: 젠장..
얼마 전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는 남자들, 끊임없이 변화하는 여자들. 간극은 존재할 수밖에 없나봐요. 그럼에도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여자는 남친의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게 변화의 보폭을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는 그녀의 외적인 변화를 여자의 시각에서 이해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