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리조트는 보홀 파니글라오 섬의 해변가에 있었다.
1층 야외 공간에는 작은 수영장이 있었는데, 수영장의 한쪽 벽이 해변과 맞닿아 있다. 그 벽의 수심은 리조트 쪽에 비해 꽤 깊었다. 그래서 윗면에 팔을 깊숙이 걸어 매달리면 바닥에 닿지 않는 발까지 온몸이 길게 늘어졌다. 딱 적당한 중력이 하반신 이곳저곳의 근육을 풀어주어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수영장 벽에 매달려 눈앞의 광경을 관람했다.
나는 먼 곳으로 뻗으며 수면이 더 짙어지는 바다를 보았다. 그 끝 수평선 위로 광활한 하늘이 퍼져있고, 누군가 일부러 수놓은 듯 길게 늘어진 구름의 물결을 보있다. 수평선에 걸친 배들은 이곳과의 거리 때문인지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내 눈곱보다 작았고, 어떤 것은 그보다 더 작았다. 마치 크고 작은 차들이 수평선 위로 줄지어 가는 것 같았다.
그 아래로 시선을 내리다 보면 좀 더 큰 배들이 있다. 그것들은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쯤 된다. 더 가까운 바다엔 사람들이 있다. 이곳의 파도는 매우 잔잔하여, 그들은 대체로 물속에 몸을 담그고 머리만 내밀고 있다. 그 모습이 재밌다. 수면 위로 꽃봉오리 같은 게 둥둥 떠있는 느낌이랄까.
땅 위에는 야자수와 연두색, 주황색 파라솔이 있다. 그 아래로 사각 테이블 그리고 잎을 엮어 만든 의자들이 있다. 어떤 이는 그 의자에 앉아서 노란색 망고주스를 마신다. 다른 이는 빨간색이다. 수박주스인 걸까. 또 어떤 이들은 그보다 아래의 빈백에 누워 맥주를 마신다. 별 다른 대화 없이 선글라스 너머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수평선의 눈곱들을 보고 있을지도.
그리고 나는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피부색이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이 공간에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고 눈앞을 스쳤다. 그보다 아래에는 비둘기들이 있다. 흰색 비둘기가 많아서 우리나라의 그것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느낌이다. 그리고 작은 참새들도 보인다. 걷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지 두 발로 콩콩 뛴다. 잠시 멈추면 머리를 여기저기로 부지런히 돌리며 뭔가를 찾는다.
참새는 누군가 자리를 비운 테이블에 올라 아주 작은 감자칩 부스러기를 입에 물었다. 인간에겐 음식이라 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크기이지만 이 존재에겐 그렇지 않다. 입을 채 다물지 못하고 아 벌리고 있다. 혹여나 그것을 돌려달라고 할까 봐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테이블 밖에서는 주인이 없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것을 바닥에 놓고 몇 차례 고쳐 문후 어딘가로 날아간다. 문득 이 작은 새가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치바에서는 허밍과 리듬이 어우러지는 미디엄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금쯤 음악이 떠오르겠지만 사실 음악은 수영장 벽에 매달리던, 아니 그보다 더 이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토록 풍성한 자극의 공간에서 한참을 그렇게 매달려 있었다. 이따금 아무것도 보지 않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내 몸은 지면으로부터 떨어져 있었고,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여행자의 시선
여행자의 시선을 즐긴다. 고작 반나절의 시간이 이토록 많은 정보로 전달되는 까닭은 내가 그곳의 이방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그곳과 분리되어 있다. 익숙했던 일상도 꽤 멀리, 그러니까 수평선의 눈곱 배들보다도 더 멀리 있다. 즉, 존재했던 곳과 지금 존재하는 곳 모두로부터 분리되는 셈이다. 그래서 눈앞에 일어나는 일들에 마음 놓고 집중할 수 있다. 여행자의 시선이란 이렇다. 낯선 장소의 이방인으로써 완전히 혹은 미묘하게 다른 장면들을 담는 것이다. 영원할 수 없기에 더 귀한, 그 시간이 참 좋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떠난다. 그것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일 수도 있고, 일주일에 가까운 긴 여정일 때도 있다. 텐트와 잡동사니를 싸들고 떠날 때가 있는가 하면, 잘 정돈된 숙소를 향할 때도 있다. 이따금 바다 위를 날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시간을 위해서는 그에 앞서는 일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동 비용부터 숙소 그리고 식사나 활동까지, 모든 여행에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다를 건너가려면 주머니 깊숙한 곳의 쌈짓돈을 끌어모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행의 이유는 돈을 버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여행을 위해, 혹은 그보다 더 긴 여행을 위해 마땅히 오늘의 수고를 감당한다.
누군가 말했다. 돈이 많았다면 매일 여행만 다니면서 살 수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나에게 이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 여행과 일상은 독립적인 경험이며, 어느 한 가지가 다른 것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오히려 상생적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있어 여행이 특별해지는 것이고, 다가올 여행이 있어 일상을 견디는 재미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같다.
사실 내가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모든 장면들 속에도 일상이 있다. 야자수 아래서 음료를 마시던 이들의 하루, 수평선 위 작은 배 위에서 일하는 이들의 시간, 감자칩 부스러기를 물고 날아가던 참새의 순간까지.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 역시 그런 일상으로 돌아올 뿐이다. 누군가의 여행지가 될 수도 있는 이곳에서, 나는 또 다른 여행자의 시선을 꿈꾸며 하루를 채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