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너 왜 말 안 놔? 우리 같은 1학년인데.”
“어, 그… 먼저 놓으세요.”
“나 아까부터 놨잖아. 말 놓은 거 안 보여?”
“아….”
“너도 말 놔~.”
“아, 예. 알았어요.” “놓으라니까?”
“아? 놓을게요.”
“말 놓으라고!!”
“알았어요~ 놓으면 되잖아요.”
“아, 놓으라니까!?”
“아, 갑자기, 막, 놓으라고 하면, 제가 못 놔요.”
- 영화 <건축학개론>, 서연(수지 분)과 승민(이제훈 분)의 대화 中
외부 기관에서 실무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4주간 진행되었고 나를 비롯한 여러 업체의 담당자가 참석했다. 늘 그렇듯 첫 대면은 어색했으나, 수업이 시작되자 강사의 입담에 몇몇 얼굴이 웃음을 드러냈다. 귀갓길엔 명함을 주고받는 이들이 보였다. 첫 주 마지막 수업이 끝났을 때쯤 누군가 회식을 제안했다. 50대 정도 돼 보이는 남자였는데, 바빠서 염색을 할 시간 이 없었는지 검은 머리카락의 뿌리 부근과 구레나룻이 회색빛이었다. 화려한 프린팅의 티셔츠와 하늘색 재킷은 그가 자유로운 회사의 직원이며, 직위가 높고 왠지 대범한 성격일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회식 자리가 무르익자 회색 머리 아저씨는 자신의 나이가 나머지에 비해 월등히 많다며 말을 놓기 시작했다. 대범하고 재치 있는 모습 때문인지 그런 태도가 분위기를 해치진 않았다. 문제는 그가 다른 사람들도 서로 말을 놓게 한 것이다. 자신은 어른 놀이 하기 싫다고, 각자의 자리에서 격식 차리고 힘주던 우리들인데 여기서라도 편하게 대하자고, 뭐 그렇게 친해지는 거 아니겠냐고.
사람들은 그의 매력에 홀려서인지 혹은 그들 역시 편한 관계를 원했는지 형님, 동생, 누님, 어이 친구, 하며 말을 놓기 시작했다. 나 역시 모나고 싶지 않아서 아직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반말을 했다. (사실 말 자체를 거의 못 했다.)
“주말 잘 보냈어?”
“아, 네. 안녕하세요.”
“아, 어, 안녕하… 말을 저번 주에 놓은 거 아니야,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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