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어색해."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나는 타이트한 청바지와 고래가 크게 그려진 박스 티셔츠, 그 위로 몸에 붙는 카키색 블레이저를 걸치고 있었다. 처음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다. 반대로 입었나? 색상 조합이 이상한가?
거울에 서서 매무새를 살폈다. 불어난 체중 탓에 옷이 좀 작아지긴 했지만 딱히 어색하진 않았다. 정수리부터 엄지발가락까지의 거리가 다소 짧아 보였지만, 배가 나와서 상의에 엉덩이가 있는 느낌이지만, 패션의 완성인 얼굴이 그것을 완성시켜주지 못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것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으니, 보기에 익숙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온 한 중년 남성이 박시한 형광분홍색의 티셔츠 아래로 꽉 끼는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봤다.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그 옷 속에서 빠르게 늙어버려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자신이 어떤 옷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어색한 느낌이었다. 티셔츠 가운데에는 커다란 히어로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며칠 전 아내의 눈에 걸렸던, 늘 입어왔지만 그날따라 다르게 보였던 옷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이런 옷을 입었을까. 15년이 지났다.
나는 15년 만에 기억이 돌아온 사람처럼 황급히 옷장을 열었다. 비슷한 것들이 한가득이다. 형형색색의 옷들, 크게 프린팅 되어 있는 고래와 캐릭터와 글자들. 그것들은 지난 세월만큼 짙어진 애착을 가득 품고 있었다.
이런 옷을 입기 시작하던 과거에는 1년에 한두 번쯤 '괜찮게 입었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은 확실하지 않다) 그런 경험은 내가 이런 스타일을 오래도록 고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옷을 입어도 예전 같은 느낌이 안 난다. 억지로 젊어 보이려는 사람 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티브이에 나온 그 중년처럼 말이다.
"누가 뭐라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과거의 언제쯤이라면 이런 생각을 먼저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옷들을 입기 시작하던 그때쯤이라면 그랬을 게다. 40대는 이런 옷들을 입으면 안 된다는 법 있어?라고 반문도 하면서.
맞는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잘 어울릴 수도 있다. 오히려 나이가 더 들면서 자연스러워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내가 되길 바랐던, 조금 더 정돈되고 어른에 가까워진 '미래의 나'는 이런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곳에 도달했다. 조금은 예상과 가까운 존재가 되었고, 이 모습은 과거의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나만 너무 열심히 나이를 먹었다. 옷장은 그대로 두고.
나이에 맞지 않는 옷을 버렸다.
주말에 옷가게를 갔다. 깔끔한 무지 티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에 손이 갔다. 특별할 것 없는 조합. 하지만 거울 속 모습은 더러 자연스러웠다. 옷을 바꾸고 나니 묘하게 마음도 달라진다. 예전엔 '독립적이고 개성 있는 존재'가 되길 원했다. 이제는 '괜찮은 사람'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