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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un 10. 2024

40대가 되면 사라지는 세 가지


목적지는 20대였다. 10대였던 나에게 있어서 그 이전까지의 시간은 주민등록증을 얻기 위한 준비과정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교육 과정의 흐름이 공교육의 피날레인 수능시험에 맞춰져 있었고, 그것을 끝내면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그곳, 그러니까 20대이자 성인이 된 사람들은 실제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갈 수 없는 곳에 가고,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었다.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일상에 딱히 제약이 없는 자유인의 삶. 그때가 되면 인생의 많은 장면을 겪고 수많은 비밀들을 알게 될 것 같았다.


이렇듯 신생아의 발가락만큼 아담한 지식수준과 상상력으로 20대를 꿈꿨으니, 10대인 내가 20대 이후의 삶을 예측해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당시 떠올렸던 30대는 뭐랄까, 삶의 습도가 많이 날아간 아저씨나 아줌마 정도였다. 퍽이나 퍽퍽해 보이던 이들이 무엇을 위해, 어떤 재미로 살아갈지 예상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부모님 나이인 40대는 오죽했으랴. 그들은 세상 모든 과업을 끝낸 후 동산 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였다. 내가 그 동산에 도달할 일은 없다고 생각될 만큼 그곳은 멀리 있었고, 혹여 도달한다고 해도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겪어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돼있을 게 분명했다.



한데 억겁일 거라 여겼던 그 시간은 막상 살아보니 찰나더라. 돌아보면 20대까진 그냥 10대의 연장선이다. 여전히 철이 부족하고 정신머리는 오간데 없다. 뭔가 깨달은 척은 하고 싶은데 딱히 아는 게 없다. 여전히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더라. 그렇게 '부산스러웠던 20대'는 책장을 넘기듯 한 순간에 지나갔다.


30대 역시 기별을 하고 오진 않았다. 그것은 마치 거리의 인파 속 사람들처럼 무심하게 다가와서는 그 속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다만 이 시기에는 20대와 달라진 한 가지가 있다. 더 이상의 실수를 봐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30대까지는 계속 성장을 했던 것 같다. 여전히 새로운 경험과 실수가 반복되기에 늘 배우고 고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생기는 일상의 리듬과 생동감 같은 게 있었다. 더 이상의 실수는 봐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크고 작은 기회가 주변을 맴돌며 나에게 다양한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이전의 연속적인 흐름은 끊겼다.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넘어와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내가 '더 이상 예전의 존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려는 듯, 그것을 상기시키는 상황이 집요하게 반복되곤 한다. 오늘은 바로 그 40대, ‘중년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세 가지를 얘기하려고 한다.


아, 내 의지로 일어난 일이 아니니 '사라졌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40대가 되면 사라지는 세 가지


1. 회복력

가장 눈에 띄게 사라지는 건 회복력이다. 이전과 달리 무리한 일정을 보낸 후 본래의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더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쉬운 예로 늦은 밤까지 뭔가를 하거나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다음 날 컨디션에서 이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의 피로가 꽤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복력'이라는 말 그대로 몸에 생긴 상처도 더디게 회복된다. (갑자기 슬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몇 날 며칠 잠을 줄이며 일한다던가 무턱대고 몸과 정신을 쓰다 보면 어느 날 ‘어? 왜 이러지?’ 싶은 생경한 상태를 겪게 될 수 있다. 전에 걸려본 적 없는 병이나 질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제가 빠르게 드러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멀쩡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던 동년배들이 갑자기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했다.


회복력. 무한하게 퍼줄 것 같았던 그것은 40대에 접어들면서 "사실은 그거 다 부채였어. 멍충아~! ㅋㅋ"라며 별안간 커밍아웃을 해버린다. 이전 같은 회복력을 기대하는 나에게 그 한계를 몇 번이고 거침없이 보여주고야 만다.



2. 관심

회복력의 부족은 일상을 대하는 총체적인 에너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보다 제한적이니 당연하게도 더 중요한 일에 힘을 쏟게 되고, 불확실하거나 가치가 낮아 보이는 시도에는 신중해진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렌드라든가 새로운 것들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과거에 일어났던 중요한 결정들의 대부분은 그저 호기심에 기웃거리면서 시작되곤 했다. 40대엔 그럴 일이 줄어드는 셈이다.


"나이."


친구에게 '40대가 되면서 사라진 것'을 물었더니 그가 답했다. 40을 넘어선 후로 자신의 나이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기억력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한 해가 넘어갈 때, 또는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지금의 위치를 기억할 때, 그 두 자리 숫자의 끝자리를 신경 쓸 만큼의 관심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관심 총량의 감소'는 내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나에 대한 외부의 반응 또한 그렇다. 40대의 개인은 한 분야나 사회에서 오랜 시간을 머문 뒤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같은 시간을 보내온 주변 사람들은 이미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새롭게 진입한 세대는 당연하게도 동산 어딘가 박혀 있는 나무를 딱히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관심의 감소는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의 감소로 이어진다. 질문이 줄어드니 답변할 일도 그런 것이다. ‘안물’인 나의 관심사로 대화를 시작한들 강풍 속 성냥불처럼 빠르게 사라진다. 그렇다 보니 특히 회사처럼 젊은 층이 많은 장소에서의 대화는 자연스레 듣는 시간이 늘어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과정이다. 나이가 들 수록 '말은 줄이고 지갑을 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3. 칭찬

예나 지금이나 나는 칭찬할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언급하는 편이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이것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나의 주요 가치관 중 하나다. 특히 30대 때는 후배뿐만 아니라 선배나 상사에 대한 칭찬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왠지 나이가 더 많고 더 중요한 역할을 가진 위치일수록 칭찬받을 일이 더 없을 것 같아서였다.


생각해 보면 이 현상은 꽤 당연하다. 칭찬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윗사람이 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나이가 들수록 위는 줄고 아래는 늘어난다. 그만큼 칭찬을 받을 기회도 줄어드는 것이다. 또한 30대의 내가 선배에게 했던 칭찬들이 받았던 오해처럼, 그것은 때때로 진정성이 없는 아부성 멘트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늘어난 후배들은 더더욱 오해를 무릅쓰고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늘 칭찬이 고픈 건 아니지만, 무채색이었던 순간에 소소한 칭찬이 드라마틱한 생명력을 불어준 경험이 꽤 있다. 이것은 나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칭찬의 증발은 일상에서의 기분 좋은 이벤트들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적고 보니 관심과 칭찬이 부족해서 좀 서운해하는 느낌인데(그렇지 않다. 지, 진짜다!!) 요점은 이것이다. 이 사라진 세 가지는 공통적으로 일상을 좀 더 활력 있게 보내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소 무모한 선택과 무리한 일정 후에도 빠르게 제자리로 회복되었다. 그랬기에 크고 작은 것들에 관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주변의 긍정적 반응과 지지는 내가 가는 길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혹여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빠르게 회복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40대부터는 이 모든 활력의 자원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 같다. 의도와는 달리 그런 환경에 놓이게 된다. 고로 심신의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가 중요해졌다. '왕년'만 떠올리면서 설치다간 거지꼴을 면할 수 없다.


이것이 80년생 40대 누구나 겪는 일인지 혹은 나 자신에게 국한되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 각각의 경험에는 별다른 불만이 없다. 다만 시간이 흘러 그것이 반복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일은 딱히 유쾌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10대 그 시절로부터 연속적으로 존재해 온 나로써, 이것은 당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시 어느 새 피부를 뚫고 나와있는 털들을 발견했을 때처럼, 이것은 생경하지만 자연스럽고, 또 받아들여야 할 삶의 흐름일 뿐이다.


자, 눈물을 닦고, 다음 편에서는 '40대가 되면 생겨나는 세 가지'를 살펴보겠다. 이번 편보다 조금은 희망적인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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