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 말이 잘생겼다. ]
타는 말이 아니다. 입으로 뱉는 말을 의미한다. 직장 동료가 나에게 '말이 잘생긴 사람'이라고 했다.
그 의미를 물었다. 잘생긴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고 행복해지는 것처럼, 나와 대화를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들었던 최고의 칭찬이다.
이 칭찬을 듣고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 번째는 내가 운이 좋다는 점이다.
칭찬을 이렇게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게 될 확률, 심지어 그가 나를 칭찬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것은 별안간 내 정수리를 향하던 벼락이, 눈에 띄게 줄어든 머리숱을 보고 마음 약해져 발길을 돌릴 확률만큼이나 낮은 것이다.
두 번째는 기대감이다. 내가 잘생긴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
외모를 뜻하는 게 아니다. 혹 잘생긴 얼굴을 얻는 팁을 기대하며 읽고 있다면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잘못 찍었다. 그런 주제라면 정작 이 글을 쓰는 나에게 가망이 없어서다. 그것은 너무나 고되고 먼 길이다..
다만 누구라도 잘생긴 ‘어른’은 될 수 있다. 잘생긴 어른이 되는 건 잘생긴 젊은이가 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잘생긴 젊은이가 되려면 얼굴, 체형, 매력 등 바꾸기 어려운 많은 것들을 바꿔야 한다. 요즘은 심지어 능력도 외모의 일부인데, 이것은 피 튀기는 경쟁을 통해서만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잘생긴 어른이 되려면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만 지키면 된다. 어른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젊은 시절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잘생기다: (사람이나 사물의 모습이) 보기에 좋다.
<네이버 국어사전>
잘생긴 어른에게 기대하는 것은 멋진 눈매와 넓은 어깨 같은 것들이 아니다. 내면의 잘생김이며, 아직 어른이 아닌 사람들이 본받거나 참고할 수 있는 모습이다. 겸양의 마음이다. 굳이 외모에 빗대자면 좋은 미소를 가진 눈주름과 온화한 입매, 양보하는 두 팔일 것이다.
‘마흔을 넘으면 자신의 얼굴의 책임 지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잘 설명한다. 지나온 시간, 그 속에서의 크고 작은 일들이 얼굴에 쌓인다는 것이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도 마찬가지다.
다만 잘생긴 어른에 대해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상식적이고 배려하는 태도를 어떻게 갖고 살라는 걸까. 그것이 서로 충돌할 수는 없는 걸까? 좋은 가치관을 잘 세운다고 한들 다양한 감정과 함께 찾아오는 여러 일상 장면에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퇴근 시간이 되면, 회사 화장실 세면대에 각종 커피 브랜드의 일회용 컵들이 쌓인다. 직원들이 퇴근길에 엘리베이터 옆 화장실에 들러서 남은 음료를 버리는데, 사무실로 돌아가 빈컵을 처리하는 게 번거로워 슬쩍 두고 가는 것이다. 빈컵은 그나마 양반이다. 남긴 음료를 그대로 두고 가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들의 행동이 미성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리 급하고 바쁜 일이 있어도, 심지어 상사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도 그 컵을 세면대에 두지 않는다. 후다닥 사무실로 돌아가 휴지통에 버린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리 한가해도 이미 놓여 있는 컵들을 치우지 않는다. 다른 컵 몇 개를 내 것과 겹쳐서 갖고 갈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나는 딱 그 정도의 인간이다. 이런 나도, 잘생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아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예쁘게 말하는' 것이다. 나 정도의 협소한 인격체도 할 수 있고, 나처럼 기억력과 의지력이 동시에 나쁜 사람도 지속 가능하다.
예쁘게 말하기 위한 규칙은 간단하다. 내 입을 통해서 예쁜 말이 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을 열기 전에 할 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천천히 말한다. 말하는 도중에라도 필요하면 멈춘다. 이따금 상대방이 답답해할 때가 있더라도, 최대한 예쁜 말들이 내 입을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예쁜 말'이란 사전적 언어처럼 사랑스럽고 귀엽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쉬울 것 같지만 안 하던 사람에겐 꽤나 어색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드럽고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주변을 헤아려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야 하고, 타인을 배려해야 하며,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문득, 좀 어려운 느낌인가? 그렇지 않다.
사실 이 방법은 내가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했던 시도이자 실험이다.
나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호흡이 짧았고 톤이 높았으며, 다른 이의 말을 쉽게 잘라먹었다. 욕이나 비속어도 곧잘 섞곤 했다. 말투는 마치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의 달리기 같았다. 조금만 뛰어도 호흡이 가팔라지고 불규칙하게 뱉는 숨처럼 들이마시고 뱉느라 바쁘다. 고른 패턴에 맞게 숨을 쉴 수 없으니, 다른 이의 말을 들으며 어우러지기도 쉽지 않았다.
당시의 어지러웠던 내 삶을 깔끔하고 선명한 지점에 두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고치려 한 것은 말버릇이었다. 타고난 성품도 능력도 그리 빼어나지 않았기에, 말이라도 예쁘게 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예쁜 말로 뱉기 시작하니 내 일상에 숨어있던 좋은 것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소 무난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면을 발견하고 예쁘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
어떤 순간에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너무 '본래의' 나와 다르게 가식을 떠는 거 아닌가,라고. 그런데 계속 '착한 척'을 하다 보니 몸에 배어 본래의 내가 그를 따라왔다. 의도적이되 사소한 행동의 반복이라도, 조금씩 그런 삶으로 데려다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앞에서 말했듯 예쁘게 말한다는 건 부드럽고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주변을 헤아려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야 하고, 타인을 배려해야 하며,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이 모든 게 마치 예쁘게 말하기 위한 전제 조건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그렇게 말하다 보니 자연스레 갖게 된 태도다. 굳이 앞뒤를 따지자면 말이 먼저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모든 말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자, 일종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을 듣는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예쁘게 말한다는 건 스스로 그렇다고 알리는 것이며, 다시 듣는 나에게도 그에 맞는 행동을 유도하는 일이다.
20년의 시간, 길었던 실험, 그 시도는 유의미했다. 내 삶은 아주 분명하게 더 나은 곳으로 이동했다. 앞으로도 이 실험을 이어갈 생각이다. 나는 잘생긴 어른이 되기로 했다
이것은 개인의 다짐이다. 앞선 모든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일기와 다름없다.
하지만 누군가 이 일기를 보고 있다면, 그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강조하고 싶다. 예쁘게 말을 하자고.
같이 잘 생긴 어른이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