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무뎌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어

소심한 처방전 III

by 왕고래


이따금 '소심'과 '불안'이 마치 하나의 단어인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소심한 사람’이라고 하면 나서기를 꺼리고 가까운 관계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신경이 곤두서 있으며, 사소한 결정에도 고민과 걱정을 반복하는 듯한 이미지를 갖기 때문이다. 반전 같지 않은 반전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불안에서 비롯된다. 나는 불안하다.


내 중심이 베팅되어 있는 큰 선택부터 점심 메뉴와 같은 작은 선택까지, 불안은 일정하게 존재한다. 그것이 나에게 적합한 선택일지, 예상치 못한 문제는 없을지, 선택하지 않은 것이 정답은 아닐지, 혹은 어제저녁에 매운 음식을 먹었는데 오늘 점심에도 먹으면 배탈이 나진 않을지 걱정하고 고뇌한다. 그 밖에도 인생에서의 새로운 사건을 겪을 때,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노력한 일의 결과를 기다릴 때, 날 소개할 때,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을 때 등 불안의 계기는 발에 치이게 많다. 참 피곤한 성격이 아닐 수 없다.



소심인의 행복을 다룬 연구에서는 이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될수록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만큼 자주 불안하다는 뜻이다. 소심인들 대부분은 이 사실을 체득해서 잘 알고 있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각성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안정될 수 있는 환경을 일상에 배치하고 관리하고자 한다. 이는 ‘소심족’의 적응과 생존에 당연한 전략이라서 딱히 그 정도를 가감해야 한다거나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늘 불안에 시달리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 있다. 불안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

불안에 무뎌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는 것.



# 정서는 어떻게 결정될까


인간의 정서는 각성 수준(흥분-차분)과 기분(좋음-나쁨)이 교차한 공간에서 결정된다. 예컨대 '흥분+기분 나쁨'은 분노, '차분+기분 나쁨'은 우울, '흥분+기분 좋음'은 환희, '차분+기분 좋음'은 행복을 의미한다.


하나의 정서가 결정되고 나면 이는 주변 맥락에 따라 그것을 유지하거나 서서히 다른 정서로 이동하곤 한다. 이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일을 겪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낸 후에야 화가 나는 이유도 정서의 변화 속도가 정보를 인지하는 속도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서는 인위적으로 빠르게 그 변화를 만들면 본래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스릴'이다. 우리는 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면서 무서운 공포영화를 보거나 아찔한 놀이기구를 탈까. 이 경험으로 인해 갑작스레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가 원래 상태로 회귀하면서 그것이 해소된다. 상대적 안도감과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대비 효과라고 한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낄 때 인위적으로 그 각성 수준을 낮추려고 한다. 가장 직접적으로 불편감을 주는 신체적 문제를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의 대비 효과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렵사리 차분한 상태를 만든다고 한들, 원래 상태로 돌아올 때 불안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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