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불의는 잘 지나치지만 선의는 조금씩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며 살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분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한다.
그런데 몸이 바로 반응하는 데 비해 마음은 이상하게도 부끄럽다. 생색내는 듯한 느낌도 싫어서 “제가 들게요”라고 속삭인 후 짐을 강탈한다. 후다닥 계단 윗편으로 옮겨놓고는 도망가버린다. 등 뒤로 ‘고맙다’는 말이라도 들리면 그렇게나 기분이 좋다. 타인을 돕는 일로 행복감을 느끼는, 나는 좋은 성격의 사람이다.
한번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양손에 무거운 짐을 끌고 가시는 게 보였다. 짐을 들어드리기 위해 손을 건네자, 그녀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당황해서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략 ‘내 짐을 왜 허락도 없이 손대냐, 내가 들고 갈 수 있다’ 정도의 내용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몇 분간 할머니의 야단을 감당해야 했다. 사람들이 쳐다봤고, 부끄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며 내 마음을 몰라준 그녀가 밉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선의라고 생각했던 것은 미처 채우지 못한 인정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난 가난한 성격의 사람이다.
성격은 공통된 성질끼리 묶어 경계를 나눈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성격이 개인의 모든 모습을 대변할 수 없으며, 이는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친구들과 놀 때, 회사에 있을 때, 낯선 병원에 갈 때, 동생과 싸울 때, 데이트를 할 때,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홀로 샤워를 할 때,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닌다.
고로 더 좋고 나쁜 성격은 없다. 그 안의 요소들이 상황에 따라 달리 발현될 뿐이다. 내 장점이 누군가에겐 단점이 될 수 있고, 이 장면에서의 부족한 면이 다른 장면에서는 필요한 면이 될 수 있다.
참 오랜 시간 이 ‘소심’이라는 섬에 머물고 있다.
잔파도에도 휘청거리고 낮보다 밤이 긴 이곳. 이따금 대형 선박이라도 지나가면 해일이 왔다며 벌벌 떠는 작은 섬. 그럼에도 뿌리는 심해 깊은 바닥에 뻗어 있는, 이곳이 좋다. 소심해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 ‘네가 소심하니까 그나마 여기까지 왔다’며 고집을 부리는 나.
나는 이 섬을 사랑한다. 사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성격의 장단점을 소개하시오.”
이 글을 읽는 당신.
고맙게도 내 긴 이야기를 선택해 준,
수많은 고비를 넘어 마지막 섬까지 도달한 당신.
당신이 이 질문 앞에서 자유로워졌길 바란다.
단점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장점으로 나타나는 장면을 떠올리는 시간이 됐길, 그런 본연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길 소망한다. 누군가의 질문에 사회적으로 유리한 성향을 나열하지 않고, 내가 머무는 섬의 사계절을 표현하게 되길, 나는 오늘도 또 소망한다.
얼마 전 계단으로 무거운 짐을 끌고 내려가시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옮겨드릴까요?” 다가가서 조심스레 여쭤봤다. 다행히 웃으며 내어주신다. 짐이 생각보다 무거워서 휘청거리며 계단 아래로 발을 옮겼다. 그녀는 내 위태로운 뒷모습을 봤는지 “아이고, 무겁죠, 어쩌나” 하시며 따라 내려왔다.
“고마워요, 정말!”
“앗, 아닙니다. 조심히 가세요.”
일상 속 10초.
별것 아닌 선의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도 당신처럼 당신도 나처럼 소심인이다.
우리는 소심해서 좋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소심해서 좋다>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