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어둠이 채 가시기 전, 논둑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대단하다. 새벽부터 뭐라고 저리 떠드는지! 어느 무리들은 싸움인지 장난인지 이리 쫒고 저리 쫒고. 그들의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리 떼, 고니 떼들의 수는 세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다. 작년에 왔을 때는 AI 때문에 경계 벽 앞에서 돌아가야 했건만 올해는 무탈하게 많은 새들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대낮에는 청명하고 봄 같은 날씨였건만 이른 겨울 아침 저수지에는 하얀 서리꽃이 내려앉아 환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추운 날씨에 물고기를 잡는 건지 세수를 하는 건지 연신 머리를 물속에 박고 있는 고니들의 모습에 내 다리가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환희에 젖어있을 때 녀석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이 여전히 재잘거리고만 있다.
저수지 둑길에는 갈대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작은 새들이 갈대 속에서 재잘거리다 낯선 이방인에 놀라 푸드덕 날아가기라도 하면 바짝 말라버린 갈대가 춤을 추듯 살포시 둑길로 쏟아진다. 참새인 줄 알았는데 노르스름한 작은 새다.
둑 아래로 펼쳐지는 호수는 서울광장의 680배라더니 저수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다. 잡목 사이로 보이는 넓은 호수에는 더 많은 새들이 헤엄치고 있고 그 옆의 나무 위에 새까맣게 앉아 있는 것들이 전부 새다. 와우~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이 떼 지어 군무를 보여준다. 그들의 아름다운 날갯짓에 한동안 얼음이 되어 버렸다. 일몰시간에 가창오리의 군무를 본 적은 있지만 이른 아침에 본 것은 처음이다.
끝없이 이어진 둑길을 걷는 동안 각종 새들을 바라보느라 심심할 틈이 없다. 하늘을 나는 하얀 고니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바로 둑길 아래에서 쉬고 있는 녀석은 그 키가 거의 성인들 가슴까지 올 듯하다. 기나긴 목을 꼳추 세우고 물을 치고 나갈 때의 위력이란! 발에 차이기라도 하면....
수풀 사이에서 종종거리고 다니는 것은 청둥오리. 엄마 따라 졸졸 쫒아가는 아가들처럼 줄지어 헤엄쳐가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 귀여운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건너편에 수상한 남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혹시 포수? 하며 자세히 보니 왕대포(?)를 장전한 사진작가들이다. 새벽 촬영을 끝내고 따뜻한 차 한잔을 하고 있나 보다.
어느새 중천에 오른 해로 추위는 가시고 따스한 봄날처럼 온화하다. 아, 아까의 서리꽃들이 사라졌다. 대신 촉촉하게 물방울들이 맺혀있다. 태양이 뜨고 짐에 따라 이렇게 온도 변화가 심한가 보다. 앗, 눈이 왔었나? 설마!
자세히 보니 새똥으로 얼룩진 나무들은 마치 눈 맞은 듯 하얗게 변했다. 저렇게 몇 해가 지나다 보면 나무들이 다 죽을 텐데...
그제야 농부들이 걱정이 되었다. 2008년 창원에서는 람사르총회가 개최되었다. 사라져 가는 습지와 습지 생물들을 지키기 위한 세계적인 학술대회라 환경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행사다. 여태까지는 농부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남저수지를 찾은 많은 철새들이 인근 농지로 날아왔을 때 농부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게다. 또한 조류학자와 환경 운동가들은 세계적인 철새의 낙원이 붕괴되는 것을 두고 볼 수도 없고...
농부 이외의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때맞추어 찾아온 아가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우리는 이 겨울 우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볼거리, 철새들을 찾아 그들의 아름다운 날갯짓과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러 창원 주남저수지로 떠나보자. 특히 이른 아침이나 저녁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