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람들은 피렌체를 꽃의 도시라 부르고 영어로 플로렌스로 표기한다.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는 백합을 도시의 꽃으로 정하고 명문 가문의 문장과 휘장에 백합을 많이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 광장은 푸른 아르노 강물에 비친 환상적인 풍경과 수많은 유적지와 도시 풍광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미켈란 젤로의 다비드상이 언덕 아래로 중세풍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도시 전체가 온통 붉은 벽돌 지붕이다.
피렌체의 주요 건물들은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설계를 맡았다. 고딕 양식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피렌체의 명성을 드높인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276명이 잠들어 있다. 당파싸움에 휘말려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당한 단테는 이곳에는 가묘만 남기고 라벤나에서 사망하고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피렌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두오모 성당은 시내 어디서든 아치형 돔이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하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 마리아)라 부른다.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막대한 후원 아래 조각, 회화, 문학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장르가 시도되었고 큰 성공을 이룬 곳이다. 피렌체는 또한 피노키오의 작가 카를로 코로디의 고향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길거리에서 목각인형인 피노키오를 판매하는 상점을 많이 볼 수 있다.
베키오 다리 주변에는 많은 점포와 사람들로 복잡하다. 1944년 연합군의 추격을 받던 독일군이 강 양쪽 기슭의 집을 모두 파괴했으나 베키오 다리만 남겨두었다 한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처음 만난 운명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사랑에 목숨을 거는 연인들의 대명사를 탄생시킨 곳이다.
옛 피렌체의 중심지인 시뇨리아 광장은 예전에 남성에게만 주어졌던 투표권을 행했던 곳이다.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건물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광장 안에는 사바나의 약탈상과 넵툰의 동상 코지모 메디치의 동상을 비롯하여 분수 주변의 많은 조각과 부조 등 르네상스 당시의 기념비적인 유물이 거의 다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