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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l 31. 2018

부부로 산다는 것은

남편의 코 고는 소리와 골프 중계방송 소리가 화음을 맞추고 있다.

"TV를 끌까아니야 깰지도 모르니 그냥 푹 자게 두지 뭐"     


남편에게 씌었던 콩깍지가 이제는 벗겨졌나 보다.  몇 년 전만 해도 해맑게 웃고 있는 남편 사진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 사람이 내 남자라는 것이 좋았는데 이제는 무덤덤하다. 연애시절 남편의  전화를  기다리던 그 시절 그 두근거림이 그립다.    

   

30 년이나 이어진 맞벌이로 우리는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그저 바쁘게 직장과 집을 오가는 시계추 같은 시간들이었다. 10여 년 동안 운영하던 빵가게를 닫으며 내가 많이 힘들어할 때 갑자기 직장에 휴가를 내고는 여행을 떠나며 위로해 주던 사람두 딸을 키워준 장모님 제사를 흔쾌히 승낙해 주고만사에 지기 싫어하는 내가 은행 승진 시험 준비를 할 때 말없이 큰딸을 데리고 나가주던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다다른 여자들은 내조를 하며 산다지만 나는 외조를 받으며 살아왔다.

 

오롯이 가정주부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주로 해외나 지방 근무 중이었다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는 무척이나 애틋했다아직도 그런 감정이 남아있냐며 친구들이나 시댁 식구들이 알 수 없는 눈길을 보낼 정도였다.    

 

얼마 전 고교 동창생들이 부부 동반해서 모였던 날 한참 수다를 떨다가 우연히 남자들을 바라보니 누가 더 잘날 것도 없는 중년의 남자들 중 내 남자가 그저 평범하게 웃고 있다. 앞으로 우리 부부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항상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람. 

"어디 사진 찍고 싶은 곳 있으면 말해데려다줄게

그래나도 열심히 밥해줄게    

 

언제 잠에서 깼는지 슬며시 과일을 깎아다 주는 남편 

 "고마워~~" 과일을 먹다가 화장대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 거울 속에는 아줌마도 아닌 웬 할머니가 있는 것이다어느새 이렇게 변해버렸지오늘은 미장원이라도 다녀와야겠다그 사람은 이런 내가 아직도 좋을까!


"산책 나갈래?"

다른 날 같으면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거절했겠지만 공연히 미안한 마음에 흔쾌히 따라나선다.  오랜만에 나선 산책길자꾸만 뒤처지는 마누라가 걱정이 되는지 여러 번 가다가 멈춰 선다 그래 부부란 이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면 되는 거야. 불타는 사랑이 식었다면 남아 있는 정으로 살아가지 뭐. 산의 초입에 들었을 뿐인데 벌써 숨이 차오른다. 슬며시  내미는 그의 손을 힘주어 잡는다. 따뜻하다.

여보 당신이 내 남편이어서 정말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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