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서둘러 왔건만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어 신도림역은 아수라장이다.
걸어가는 건지 밀려가는 건지.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온다.
건널목에서 양복에 백팩을 둘러멘 남자가 열심히 영상통화 중이다.
"아빠, 언제 와?"
"응,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
우아아 앙~~ 전화 속의 두 녀석은 싸우는가 보다.
"에이 싸우지 마. 형이 양보를 해야지" 떠듬떠듬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슬쩍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행복해 보였다. 나만큼이나 피곤할 텐데 그의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은커녕 눈꼬리와 입가에 행복감이 젖어 있었다. 꼬마들의 모습만 봐도 하루의 피로가 가시나 보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휴대폰을 들고 있던 남자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가 버렸다.
마흔아홉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지 오래다. 항상 사업 때문에 바빴던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조차 힘들었다. 삼대독자로 귀하게 태어나 일찍 부모님 여의고 칠 남매의 가장이셨던 아버지는 그 어깨가 엄청 무거웠을 게다.
어려서는 몰랐다가 내 나이 마흔아홉이 되었을 때 깨달았다. 아버지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셨구나. 내가 사춘기 때,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셨고 할아버지의 선산마저 빛으로 날아간 뒤로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로 사셨다. 무뚝뚝하고 권위적이고 무능하게만 여겼던 아버지!
여주 군청에서 공무원으로 평생을 보내신 시아버지도 장손으로 짊어져야 할 무게가 꽤나 무거우셨을 게다. 시아버님은 올해 나이 구십이 되시면서 힘이 드시는지 전 같지 않고 자주 짜증을 내시지만 내게는 아주 다정다감하시다. 가까이 모시고 있지 못해 늘 죄송할 따름이다.
빵가게 할 때 아버님은 아들도 아니고 첫째 며느리도 아닌 내게 자주 전화를 하셨다.
"날이 춥다. 어서 가게문 닫고 들어가!"
또 어느 날에는,
"나 지금 터미널이다. 문화원 사람들과 서울 왔다가 내려가는 길이야, 그래 요즘 무릎은 좀 어떻니? 어서 병원 가봐라"
친정아버지한테는 들어보지 못했던 따뜻한 말이다.
어느 날, 시부모님과의 여행길에서 사진을 찍다가 깜짝 놀랐다. 산처럼 느꼈던 아버님의 등이 어느새 새우 등처럼 굽어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팔을 잡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산처럼 든든하던 아버님이 어느새...
자식들의 무관심에서 벗어나고자 육 남매에게 요일별로 전화하는 날을 정하시고는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신다. 수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 온다.
"무슨 일 있니? 어제 전화가 없길래..."
"이궁~~ "
요새는 남편이 챙기고 있다. 무뚝뚝한 아들과 아버지와의 대화는 다섯 마디도 필요 없다. 의례적인 인사만 오가고는 뚝!
오늘은 오랜만에 여주에 내려가 점심이나 사드리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