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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당의 추억

by 마미의 세상

"우아 아악 어떡해 어떡해"

"왜 왜?"

"삼각대 꼬다리 안 가져왔어"

도대체 덜렁거리는 것에는 남에게 지지를 않는다. 지난번 출사 때는 배터리를 하나밖에 가져오지 않아 연사로 찍지를 못했는데 이번에는 열심히 ND 필터에 배터리에, 눈이 많이 올 것을 대비하여 아이젠, 패치까지 준비해 왔건만 망원렌즈에 붙여놓은 꼬다리 떼어오는 것을 잊었다.

우리가 해신당을 찾는 이유는 장노출을 찍기 위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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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당에 들어서자 다른 일행들은 곧바로 바닷가로 직진했다. 해가 중천에 떠있건만 고성능 ND 필터를 모두 가져왔나 보다. 애써 마련한 필터와 삼각대는 고스란히 가방 안에 놔둔 채 딸랑 카메라만을 들고 나섰다.

"야, 여기 여자들이 좋아하는 곳이네~"

킥킥대는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말 한마디에 나는 얼른 가던 길을 바꾸어 바닷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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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온 탓인지 약간 차갑기는 했지만 깨끗한 푸른 하늘과 너울대는 파도가 상했던 기분을 맑게 바꾸어 주었다. 그까짓 사진이 뭐라고 바위마다 위험천만하게 사람들이 매달려 끝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담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여기저기 다니며 몇 컷 담고는 그저 멍하니 밀려오는 파도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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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삼척 여행을 온 적이 있다. 바다 열차도 태워 드리고 삼척 대금굴에도 들어가고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는 모노레일까지 태워 드리니 두 분은 너무 행복해하셔서 우리 부부는 그저 열심히 두 발로 모노레일 바퀴를 돌려야 했다. 서울에 올라가기 전 마지막 코스로 택한 곳이 해신당이다. 그때 나는 해신당이 그저 전망 좋은 공원인 줄 알았다. 공원을 오르기보다는 내려오기가 편하다기에 위쪽에 주차하고는 휠체어를 끌고 모셔야 하는 어머니는 남편이, 두 발로 여기저기 다니시기를 좋아하는 아버님은 내가 맡기로 하고 따로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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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팔짱까지 끼고는 전망 좋은 바닷가로 내려갈 때 까지는 몰랐다. 초가집 같은 것이 있어 궁금하여 아버님과 같이 들여다본 순간 둘 다 얼음이 되고 말았다. 팔짱 낀 팔을 슬그머니 빼고는 "크흠!" 하시며 앞서 가시는 아버님의 뒤를 그저 졸졸 따라가야만 했다.

"뭐 이런 곳이 다 있담~"

그리고 이어지는 장승들의 해괴한 모습들에 아버님은 연신 큰기침을 하셨고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다. 왜 그다지도 공원 길이 길었던지! 중간쯤에 잠시 쉬어 가시라고 권한 의자도 알고 보니 남근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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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일행 중 한 사람이 다가오며

"뭐 좋은 일 있어요?" 혼자 웃고 있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남자인 그 사람에게 또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그저 웃을 뿐.

_DSC9252.jpg 어느새 복수초가 눈 속에 피어났다


어느새 내린 눈이 녹아 떨어지고 있다. 올해는 왜 이렇게 눈이 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폭설이 내린다기에 밤새 달려 간 강원도에서 설경은커녕 텅 빈 메모리카드만 가지고 돌아왔으나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바닷바람 쏘인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하다.

아버님의 기억 속에는 해신당이 어떻게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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