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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Feb 06. 2019

설 명절을 보내며

전쟁(?) 같은 설 명절이 끝났다. 보름 전부터 명절에 대한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내 몸은 벌써부터 감기몸살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상하다. 큰 일을 앞두면 몸이 먼저 아프다. 친정 식구들이 돌아간 후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푹 자고는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가족들이 혹시라도 깰까 싶어  조용조용 그릇들을 정리하고는 어둠이 가시지 않는 창밖을 내다보며 해뜨기를 기다린다.



명절을 보내며 많은 여자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둘째 딸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으로 시집가겠다고까지 한다. 가혹할 정도로 여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주는 명절.


한 집안의 장손으로 무지무지하게 고지식하고 전통만을 강요하시던 시아버지께서 명절 식사 후 시댁 식구들을 모아 놓고는 모든 제사를 없애라고 하셨다. 4대 봉사가 점차 생략되어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 제사를 합쳐 지내고 있건만 그것마저도 없애라 신다. 그분께는 정말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제사를 아들네로 넘기신 지 이제 겨우 1년, 올라오실 때마다 그렇게 미안해하시더니 그런 결정을 내리시고 말았다.



부쩍 기력이 빠지신 시부모님을 보며 가슴이 찡해온다.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야 보이기 시작한 시부모님께 조금이나마 잘해드리려 노력해 온 10여 년의 시간들. 지난해 갑자기 모든 재산을 큰 형님께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애써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재산의 많고 적음보다 항상 너희 둘에게 똑같이 해준다는 말을 밥먹듯이 하시던 부모님이었기에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대대로 아들만 자식인 집안, 특히 장남에 대한 기대가 큰 시어른의 결정 앞에 애써 불편한 심기를 가라앉혀야 했다. 그러나 마주 한 큰 집 가족들에게 또다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가누기가 어렵다.


시골 땅과 아파트까지 사주고도 손주의 외면을 받아야 했던 시아버지는 아직도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것을 잘하셨다 생각하고 계실까? 갑자기 어떤 마음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제사까지 없애라 하셨는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명절만 되면 해외로 나가버리는 손주가 그나마 온 인상 쓰며 집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고마워하시는 걸까?


그 모든 재산을 받고도 시아버지 구순 잔치를 하자는 나의 말을 반대만 했던 형님과 조카 또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형님도 시부모님도 미워 설 명절에는 해외로 나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이 다부지질 못한 나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두 딸을 데리고 설음식을 마련하여 형님네로 가져갔다. 더 화가 난 것은 온 가족이 만들어야 할 만두마저도 어머님이 여주에서 다 만들어 오신 것이다. 형님네가 한 것이라고는...


올케가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난 음식으로 엄마 제사를 지낼 것이 싫어 우리 두 딸을 키워 준 엄마 제사만은 내가 지내고 있다. 시댁 차례가 마무리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다시 제사 음식을 마련했다. 7남매의 적지 않은 가족 게다가 오빠들의 사위까지도 모두 참석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열심히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고, 모든 가족들은 만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독한 양주 병이 몇 병이나 뒹굴고 있는지...


나는 무식하게 구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많이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나 하나 힘들면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1 년 내내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뿐인 것을 왜 그렇게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전을 부치며 큰 딸과 작은 딸의 대화에서 유산 때문에, 차례 지내는 것 때문에  요즘 형제간에 왕래가 끊어진 집이 적지 않다 한다.

아마 우리도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지금처럼 왕래할 자신은 없다. 친정도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는 큰 오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 우리 집을 찾아온다면 나는 맛이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정성껏 그들을 대접할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이 서로 만나고 정을 나누며 사는 거 아닌가? 그 속에 골병드는 여자가 있다면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개선하면 될 것 이거늘...



어느새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6학년이 되어버린 2019년, 좀 더 넓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련다. 

나의 60대 인생도 아름답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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