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에 내가 타고 가야 할 마을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 안돼 안돼!"
열심히 손짓을 하며 뛰었으나 버스는 이미 출발하였다.
"이궁!"
아니 신호등에 멈춰 섰다. 나는 무단횡단까지 하며 열심히 뛰어가는 순간 "빠지직" 하며 온 몸에 지뢰를 맞은 것 같은 통증이 오더니 오른쪽 다리가 디뎌지지가 않는다. 찻길 한가운데에 멈춰 선 채 얼음이 된 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잠시 후 술 한 잔을 하고 벌건 얼굴로 놀라 뛰어나온 남편은 무작정 나보고 업히라고 한다. 술까지 취한 가냘픈(?) 남편에게 내 육중한 몸을 얹을 수도 스스로 한 발짝을 내디딜 수도 없다. 계속된 실랑이 끝에 큰 딸이 가져온 끌채에 짐짝처럼 실려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경주에 계신 집안 어르신이 골절 사고가 나서 친정 가족들과 같이 병문안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작은 오빠의 RV차에 여러 명 끼어서 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허리도 아파지고 꾀가 나던 중, 가창오리 떼 사진 출사 공지가 떴고 한참을 망설이다 내가 택한 곳은 사진 출사지였다.
무박 출사는 한밤중에 떠나야 하기에 밤 11시가 되도록 TV를 보며 거실에서 뒹굴던 나의 몸은 버스정류장에서의 무리한 몸놀림으로 사고가 난 것이다. 불어난 체중 때문인지 무거운 카메라 장비 때문인지 귀한 나의 연골판은 찢어져 버렸고 열흘이 넘도록 도스 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았건만 아직도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제대로 벌 받은 것이다. 예정대로 병문안을 갔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
오늘은 미리 예약한 스페인으로의 여행 출발일이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은 나의 무릎을 보고 또 보며
"걸을 수 있겠어?"
나도 모르겠다. 다리를 다친 뒤로는 멀리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취소 위약금만 없다면 다시 날을 잡으련만 여행경비의 20%나 물어야 한다니 어쩔 도리가 없다. 진통제에 파스에 안마기까지 가방에 챙기고는 니스의 해변과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들을 떠올리며 집을 떠난다.
잔뜩 준비한 밑반찬과 라면 누룽지만 먹으며 버스 안에만 있다 오는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