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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Apr 24. 2019

벌써 우리 나이가...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를 신도림 참치집으로  정한 것은 나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에스칼레이터로 연결되기에 몸이 불편함에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에스칼레이터가 심술을  부려  움직이질 않는다. 


길 건너편에서 백화점까지 오는 데도 겨우 걸어왔건만 까마득하게 높은 건물의 수많은  계단을 어떻게 또 올라간단 말인가? 계단 하나 오를 때마다 관계자들에게 욕을 퍼부어대도 속이 풀리지를 않는다. 계단 중간쯤 올랐을 때는 현기증까지 나며 허리를 펼 수조차 없다.


참치집에 들어갔을 때의 나의 몰골이란 아마도 미친 여자 정도였나 보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친구들을 찾아냈고 절뚝절뚝 뒤뚱 데며 걷는 모습에 친구들은 일제히 일어나 나를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다 왔다는 안도감에 눈물까지 날 지경이다.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다니...



고등학교 때 같은 동아리에서 그렇게 붙어 다녔건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1년에 두세 번이나 볼까? 그저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나 얼굴을 볼 정도로 소원해져 버렸다. 오늘 갑자기 모인 이유는 미국으로 이민 갔던 친구가 결혼식 준비를 하던 아들을 갑자기 심장마비로 보냈기 때문이다. 


항상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하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애써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참기 힘든 슬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딸 둘을 낳고 얻은 아들이기에 얼마나 귀하게 키웠었는지 또 그 녀석이 얼마나 부모의 속을 태웠었는지 또 그런 아들의 행복한 결혼을 코 앞에 두고 보내야만 했던 그녀의 절절한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기에 나는 그저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잘못 말을 꺼냈다가 그녀의 상처 난 마음이 다칠까 싶어 우리는 애써 말을 아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화제는 나의 사고에 대하여 말할 뿐이었다. 이제는 건널목을 건널 때도 신호등이 처음 켜졌을 때나 건넌다는 말에 일제히 동감하는 친구들을 보며 가슴 한편으로 스산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을숙도로 여행을 가서 갈대밭을 헤매고 다닐 때만 해도 온 세상은 분명 우리들의 것이었다. 비록 값싼 여인숙집 앞마당에서 샤워를 하면서도 우리는 그때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각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모두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아온 40년, 오늘 모인 친구 다섯 중 둘이 벌써 남편을 여의었고 아들을 앞세운 친구까지 생겼다.  아무리 100세 인생이라고 외쳐도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그동안 나의 기대에 못 미치는 가족을 구박하기 일쑤였던 나의 행동이 얼마나 미련했었는지. 그저 온 가족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40대에 남편을 여의고 몇 달 전 사위를 본 친구는 은행 퇴직 후 성당 봉사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1년 전 폐암으로 남편을 잃은 친구도 무슨 건강 사업에 몰두하며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다. 그런 친구들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아들을 잃은 친구도 다음에 만날 때는 조금이나마 그 옛날의 미소를 찾지 않을까?


30대가 되고 40이 되었을 때는 그저 죽을 것만 같았었다. 그러나 50이 되고 60이 된 지금은 도리어 아무 감각이 없다. 다만 다리 힘 풀리기 전에 가보지 못한 곳에 많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미워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이해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아 그런데 힘 풀린 내 다리는 언제쯤이나 힘이 생기려나?

이미 봄꽃은 다 져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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