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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May 23. 2019

이중섭 문화의 거리

작가의 산책길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군의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로 미술 창작가 협회에서 태양상을 받는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다. 그를 생각하면 우선 떠오르는 작품으로 격렬한  필치와 강렬한 색감의 소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그의 초기 작품은 야수파 화풍에 심취하여 향토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는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고 살다가 8.15 해방을 맞았다. 그리고 다시 6.25 전쟁이 발발되자 원산의 어머님께 그때까지 그린 그림을 맡기고는 부산 등지로의 피난생활이 시작되었다. 부산에서 어렵게 생활을 하던 그는 가족마저 일본으로 보내고 부두 노동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다시 정착하게 된 곳이 제주도 서귀포다.

한 평 조금 넘는 방에서 피난민 배급으로 연명하던 그는 끼니를 때우기 위하여 밭에서 채소를 캐오거나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와 반찬으로 삼았다. 



1955년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나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고 겨우 수중에 들어온 돈도 술값으로 지출하게 되며 가족에게는 영영 돌아가지 못한 채 거식증과 간장염으로 만 40 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부터 문화체육부에서는 이중섭이 살았던 거주지와 미술관, 공원, 거리를 조성하게 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이중섭의 그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기증된 그림만으로 구성되어서 인가 보다.


이중섭의 그림 중에 은지화라는 것이 있다. 담뱃갑 속의 은지에 송곳과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드로잉을 한 후에 물감을 바르거나 담뱃진을 문지른 후 마르기 전에 닦아 내어 파인 선 부분에만 선이 입혀진 것이다. 게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그림에서 그의 가족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을 알 수 있다. 

피난 생활의 어려움에도 가족들이 유쾌하게 묘사되는 것은 전쟁의 가난과 공포를 잊고자 하는 상상력의 결과라 한다.




이중섭의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벽화에는 그의 은지화에 나온 인물 풍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다른 골목길에는 다른 벽화가들의 그림도 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천재화가는 외로워도 그림을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어도 담뱃갑 은지에라도 그림을 그렸다. 아마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에 그 어려운 시간을 버텨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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