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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l 19. 2019

오름의 여왕, 다랑쉬오름

제주도민들한테 단 하나의 오름을 추천해 달라면 다랑쉬 오름을 꼽는다.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이는 높은 봉우리라는 뜻으로 다랑쉬 또는 월랑봉으로 불린다. 비자림과 용눈이 오름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다랑쉬 오름은 해발 382미터나 되어 '높은 오름' 다음으로 높다. 

현재 , 탐방로가  공사중이라 바로 옆의  야자수 매트가 깔린 임시통행로로 올라야 한다 

오름 중턱까지는 가파르고  울창한 삼나무와 편백나무숲이 이어진다.  울창한 숲을 올라 가쁜 숨을 고를 무렵부터 오른쪽으로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끈(작은) 다랑쉬 오름이다. 아끈이라는 말을 되네이며 바라보는 그 오름은 귀여운 아이처럼 정상까지 계속 따라온다. 

아끈 다랑쉬 오름이 잘 보이는 곳에  마련된 쉼터

정상에 올라  만나는 굼부리는 한라산 백록담 정도의 크기로 넓고 가까이 가기가 두려울 정도로 가파르게 파인  굼부리의 깊이는 115 미터나 된다 하니 오름의 반 이상이 깊게 파여있는 것이다.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날라 한라산을 쌓을 때 흙 한 줌씩 집어놓은 것이 오름이 되었는데 한놈의 대가리가 너무 도드라져 대가리를 주먹으로 탁 쳤다더니 너무 세게 쳤나 보다.

굼부리는 정상보다 오른쪽으로 내려와야 그 실체를 잘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오름이 비대칭적인 경사를 가졌는데 가지런하게 빨려진 원추체의 빼어난 모습에 오름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가까이 가기조차 두려운 분화구 앞에는 폭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사진이!

이곳은 1720년  숙종이 돌아가시자  효자 홍달한이 올라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애곡 했으며 삭망에도 반드시 올라와 산상에서 밤을 지새우던  '망곡의 자리'다. 

이곳에서 바로 내려가지 말고 굼부리를 꼭 돌아보는 것이 좋다. 오른쪽으로 더 가다 보면 큰 나무가 없어 굼부리도 잘 내려다보이고 거센 바람과 함께 위태로운 초원길을 걷는 맛이 짜릿하다. 흐린 날씨 탓으로 제대로 된 전망은 볼 수 없었으나 일출과 일몰 때의 모습도 장관이라 한다.

거미오름과 높은 오름도 건너편에.

다랑쉬 오름 주변은 4.3 사건 때 유격대원들의 활동 요충지였다. 다랑쉬굴에 피신했던 하도리 종달리 주민들은 토벌대에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고는 좌경 분자로 찍혀 통곡소리도 내지 못한 체 사체 수습은 엄두도 못 내었다. 

1992년 희생자 유골 11구가 44년 만에 발견되었으나 관계 당국은 입구를 봉쇄하고 시신은 강제 화장하였다. 20여 가구가 살던 다랑쉬마을은 그 아픔을 간직한 채 폐촌이 되었고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만 같은 날씨 탓인지 힘겨운 산행 탓인지 아픈 사연 때문 인지 내려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벌써 기억 저편으로 잊히고 있는 4.3 사건의 피해자들은 지금도 그 아픔 속에 살아가고 있다. 광풍의 역사 속에서  살아내야  했던 그들의 아픈 상처가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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