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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Aug 21. 2018

봉정암 가는 길

                                                                                                         

지난주부터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봉정암'이라는 세 글자가 오늘 또 눈에 밟힌다.  
"이번에는 갈 수 있을까?  주로 수능 보는 아이들 엄마가 가는 코스인데..."    

지난해 6월, 우리는 무턱대고 동쪽으로 떠났다. 항상 일 년에 한 번쯤은 가는 설악산, 그날의 목적지도 변함없이 설악산이고  코스는 백담사였다. 전 대통령 내외가 있었다는 백담사가 항상 궁금하였지만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인지 용대리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우리는 주차비 해결도 할 겸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 식사를 하였다. 뭐니 뭐니 해도 아침에는 황태 국이 최고다. 시장했던 우리는 사골국물처럼 뽀얗게 우러나온  국물과 함께 든든한 아침을 먹었다.

한적한 주차장 너머 아침 햇빛을 받은 나뭇잎들이 유난히 예쁘게 반짝이고 있다. 용대리 주차장부터는 일반 자동차의 출입이 금지되어, 마을 자치회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가야만 한다. 
"아니 왜 자동차 출입을 막고 버스를 태우는 거야?" 
"15분마다 운영하는데 40명씩 태운다 해도 한 달이면.... 와! 이게 얼마야?" 
남편은 어느새 운임을 계산하고 있다. 버스에 올라타니 구불구불 굽이 길이 험하고 좁아서 양방향 통행이 안된다.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가며 마음이 누그러진다. 흔들거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청봉에서 시작된 물이 만드는 백 개의 작은 연못을 볼 수 있다는 '백담계곡'. 크고 작은 암벽 사이를  맑고 푸른 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모습은 설악산에서나 볼 수 있는 절경 중 하나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오르니 길게 뻗은 수심교 너머로 산사가 눈에 들어온다. 불에 몇 번이나 타고 재건되었다더니 상상했던 고찰이 아닌 아주 정갈한 모습이다. 수심교에 들어선 순간 감탄사를 아낄 수 없다. 뿌연 아침 안갯속, 끝이 보이질 않는 계곡에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하나씩 쌓아 올린 수많은 돌탑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간절함이 느껴진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아니면 어떻겠는가? 새벽 별이 뜨면 목욕재계한 후 장독 뒤에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빌던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이지 않을까? 물살이 세지 않아서인지, 그 염원이 간절해서인지 얼기설기 쌓아 올린 돌멩이들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꼿꼿하게 서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카메라에 담느라 엎드려 끙끙거리다 보니 남편은 아이처럼 옆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다.



널찍널찍하게 배치된 법당 사이를 유유자적하게 걸어본다. 상쾌하게 내려오는 햇살이 나의 마음을 더욱 포근하게 감싸준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 한 곳이기도 하다. 순간 어렸을 적 교과서에 읽던 '님의 침묵'의 시구가 떠오른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출가와 수행 그리고 옥중투쟁. 역동의 시대를 살아내며 펴낸 서적들을 본다. 안일한 생활에 불평불만만 일삼는 나 자신과 비교되며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정자에서 차 한잔 마시며 계곡의 정취에 빠져 있을 때 남편이 길을 재촉한다. 봉정암 까지는 무리이고 무릎이 허락하는 곳까지 오르기로 한다. 초록 잎이 한창인 숲길은 오르막이 없는 평탄한 길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영시암에 도착. "별거 아닌데!" 나는 끄떡없다는 듯 앞으로 전진을 외쳤고 남편은 불안한 마음으로 나를 본다. 또다시 도착한 수렴동 대피소. 다리가 아파지기 시작했지만 또다시 "전진"을 외쳤으나 그다음부터는 쉽지 않다. 어딘가를 찍고 돌아와야 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공연히 호기를 부렸나? 그래도 뭐 어째! 여자가 칼을 뺏으면 두부라도 잘라야지" 억지로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그런데 벌써 하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 철야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불자들!" 가볍게 뛰다시피 내려가는 젊은 엄마들이 부럽다. 아니 연세가 지긋하신 분 들도 등에 봇짐을 진 채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계시다. "이궁~"
겨우 도착 한 폭포. 오늘 임무 완수! 나는 철퍼덕 주저앉아서는 남편만 그 너머까지 다녀오라고 한다. 폭포 위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절경이겠지만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내릴 자신이 없다.
 
그날 하산하며 나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내 다음에는 기필코 다리의 힘을 길러 봉정암까지 가보리라. 그리고는 새까맣게 잊고 있던 '봉정암' 세 글자. 10월에 간다 하니 딱 좋은 때인데 걱정부터 앞선다.
 "내가 과연 그곳까지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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